[기고/박원명]감정기복 심한 청소년 조울병 검진을

  • 입력 2009년 7월 22일 02시 55분


질풍노도의 시기, 심리적 격동기에 있는 청소년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여기에 학업이나 주위의 기대에 대한 중압감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는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조울병으로 알려진 양극성 장애는 청소년기에 가장 흔하고 위험한 정신질환 중 하나이다. 기분이 좋은 상태인 ‘조증’과 우울한 상태로 가라앉는 ‘울증’ 증상이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질환으로, 기분이 양 극단을 오르락내리락한다고 해서 양극성 장애라 한다.

최근 대한우울조울병학회가 전국의 고등학생 1, 2학년 2000명을 대상으로 양극성 장애 선별검사를 실시한 결과 5.2%에서 양극성 장애가 의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인구를 포함한 양극성 장애의 일반적인 유병률이 1∼2.5%인 데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양극성 장애의 우울 시기(양극성 우울증)에 나타나는 증상이 흔히 아는 일반 우울증(단극성 우울증·이하 우울증)과 비슷해 우울증으로 오인되지만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는 엄연히 다른 질환이다. 양극성 장애가 장기화되어 자제력을 상실하고 병적인 기분 상태에 빠지면 대인관계가 나빠지는 등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이보다 더 심각한 점은 양극성 장애로 인한 높은 자살률이다.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면서 감정의 기복이 심한 탓에 우울증보다 자살률이 2배 이상 높고 일반인 자살률보다는 무려 20배 이상 높다. 우리나라에서 자살이 10대 사망 원인 2위, 20대에서는 사망 원인 1위임을 감안한다면 양극성 장애에 대한 조기 진단과 적절한 약물 치료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발병 시기는 빠른 편이지만, 정확한 진단에 이르기까지는 약 10년이 걸린다는 점은 양극성 장애 치료의 큰 걸림돌이다. 정확한 진단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양극성 장애의 질환 특성상 진단이 어렵기도 하지만 주위 사람이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양극성 장애 증상을 청소년기의 반항이나 기분 변화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탓도 있다.

여기에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정신과에 대한 편견은 양극성 장애를 비롯한 정신질환의 치료를 가로막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7명은 정신질환이 생겨도 사회적 편견이 두려워 치료를 기피한다는 조사 결과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부모들은 자녀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자칫 ‘정신병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더욱 병원 방문을 꺼린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오해 때문에 양극성 장애를 제때 치료하지 못한다면 환자의 고통은 더욱 길어지고 심해진다.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가 없으면 양극성 장애의 재발이 빈번해지고, 재발이 반복될수록 환자의 상태는 악화돼 치료가 점점 힘들어진다.

양극성 장애는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하에 지속적인 약물치료를 한다면 별 무리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한 질환이다. 따라서 증상을 보이는 청소년을 조기에 정확히 진단하고 빨리 치료해야 한다. 조기 진단과 치료만이 양극성 장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자살과 같은 피해를 예방하는 길이다.

청소년기 양극성 장애 환자에게는 가족 및 주위의 관심이 필수적이다. 양극성 장애를 기분 변화, 청소년기의 반항 정도로만 생각하면 질환이 더 악화될 수 있으므로 부모는 청소년기 자녀의 기분 상태 및 감정 변화를 잘 관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감정의 변화가 심하다고 느껴지면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과 치료를 권유하고, 이때는 부모도 같이 상담을 받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가정과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대처는 양극성 장애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안전장치이다.

박원명 대한우울조울병학회 이사장 가톨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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