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우신]두 여성 산악인의 경쟁에 누가 돌을 던지랴

  • 입력 2009년 7월 14일 02시 56분


여성 산악인 고미영 씨(42)가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6m) 정상에 오른 뒤 하산 도중 절벽으로 추락했다. 고 씨는 오은선 씨(43)와 여성 최초의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완등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지난해까지 7개 고봉(高峰)을 정복했던 고 씨는 올해 무서운 속도로 히말라야를 올랐다. 고 씨는 낭가파르바트에 오르기 전 마칼루(8463m), 칸첸중가(8586m), 다울라기리(8167m) 3개 봉을 연속 등정했다. 당초 목표대로 올해 14좌 완등에 성공했다면 그는 한 해에만 8000m 히말라야 봉우리 7개를 오르는 최다 등정 신기록(기존 기록은 박영석 씨의 6개 봉)을 세울 참이었다.

사실 고 씨와 오 씨의 경쟁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많은 이가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각 봉우리의 베이스캠프를 헬기로 이동하며 속도전을 벌이는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그러던 참에 사고가 났으니 비난의 화살은 곳곳으로 향하고 있다. 경쟁을 벌인 두 사람은 물론 두 사람의 소속사, 경쟁을 부추긴 산악인들 그리고 언론까지 도마에 올랐다. 산악인들의 우려처럼 둘의 경쟁이 과열된 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 주위의 기대가 커지다 보니 두 사람 모두 무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초 계획대로 둘이 올가을 안나푸르나(8091m)를 같이 오르며, 여성 최초의 14좌 완등을 한국 여성 산악인 2명이 함께 이뤘다면 어떻게 됐을까. 산악인은 물론 국민들도 손뼉을 치며 기뻐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두 여성 산악인이 “히말라야를 동네 뒷산처럼 오른다”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둘은 ‘동네 뒷산’을 오른 것은 분명 아니었다. 이들에게 산은 곧 삶이었으며 생존과 직결되는 직업이었다. 유명 산악인들조차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자비를 털어 등정을 떠나는 것이 현실이다. 투혼을 불태운 둘의 경쟁은 올해 산악계 최대 이슈였고 덕분에 산악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증가했다.

자신이 겪지 않은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상대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두 여성 산악인의 14좌 완등을 축하했을 사람이라면 이번 사고를 두고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쉬운 비난은 삼가야 한다. 고 씨의 열정이 많은 이의 가슴 속에 남길 바란다. 그리고 이번 사고는 후배 산악인들이 좀 더 나은 여건에서 산을 품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한우신 스포츠레저부 hanwsh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