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33>

  • 입력 2009년 7월 9일 13시 55분


[2049년 서울, 안개 벽, 그리고 개미굴]

2002년 성황리에 열린 스위스 엑스포. 건축가그룹 '딜러 앤 스코피디오 (Diller & Scofidio)'는 베르돈(Yverdon-les-Bains) 마을의 뉴샤텔 호숫가에 '블러 빌딩'(Blur Building)을 만들어 일반인 뿐 아니라 당시 건축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그들은 건물 외부에 3만여 개의 고압 노즐로 미세한 물방울을 흩뿌려 인공 안개를 만들고, 거대한 안개 무리로 둘러싸인 모던한 건축물을 세웠다. 인공 안개를 통해 건물이 호수 위 물안개 속에 떠 있는 듯한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2020년대 이후 '블러 빌딩'으로부터 영향받은 많은 건물들이 베를린과 밴쿠버 그리고 서울에 빼곡히 들어섰다. 안개가 벽이 되고 구름이 천장이 되는 건물들. 공간의 안과 밖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인간들의 공간은 자연 속으로 직조해 들어갔다. 이른바 '구름 위의 도시.' 그 중 서울은 가장 화려했다.

아름다운 한강의 조망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고자 2015년에 시작된 '디자인 서울 2030'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에게 '물의 도시'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한강 주변에 설립된 '하늘호수공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주거단지들이 한강변에 줄지어 늘어섰고, 폭포가 벽이 되고 시냇물이 담이 되는 건축물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배나 요트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통근 쾌적선'이 큰 인기를 끌면서 서울시민들의 일상은 훨씬 다이나믹해졌다. 물 만난 고기처럼.

아래층에는 자동차와 버스, 위층에는 모노레일이 통과하는 이중다리가 동호대교와 한남대교 자리를 대체한 것도 2040년대 서울의 큰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서울외곽순환선과 서울관통선으로 구성된 자기부상 모노레일은 일산과 분당, 구리와 하남, 과천과 용인 등 서울 주변 지역에서 살고 있는 직장인들을 30분 만에 도심으로 실어 날랐다. 학자들은 이 편리한 모노레일이 서울 근교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스프롤아웃(Sprawl out)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별시연합공용어사전』에 따르면, 스프롤아웃이란 '도시 외곽이 무절제하게 성장하는 현상'을 뜻한다.) 그 중에서도 로봇격투기 대회가 열리고 있는 상암동은 가장 복잡한 트랜스퍼 포인트(transfer point)이다. 모노레일과 지하철, 버스가 교차되는 이 지점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활력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2040년은 서울특별시에게 각별한 해다. 엑스포와 서울예술포럼이 한 해에 열리면서 세계적인 정치경제리더들과 창조적인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서울은 그들을 맞이하게 위해 꽃단장을 했고, 그들은 서울을 사랑하게 됐다. 국제적인 도시의 위상을 한껏 높인 한 해라고나 할까.

2039년 서울 한복판에 지어진 건물이 '서울 2040 컨벤션센터'다. 우리에겐 '개미굴'이란 별명으로 훨씬 더 친숙한 이 건물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랜드마크이다. 흰개미가 쌓아올린 개미집을 연상시키는 이 건물 주변으로 길게 늘어선 '예술가들의 거리'는 아시아 문화의 최신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트렌드 인사이트'(trend insight) 공간이 되었다.

서울이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이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의 전경이 전해주는 '곡선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직선 미학에 젖어있던 서울시민들에게 새롭게 지어진 마천루들은 부드럽고 자연스런 곡선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스카이 워크'라 불리는 하늘산책은 월세 1천만원을 내며 힘겹게 살아가는 서울 소시민들만의 특권이기도 했다. 특히나 개미골 맨 윗층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하늘 풍경은 그 자체로 '천공의 성 라퓨타'였다.

2040년 이후, 서울은 국제연합(UN)이 지정한 '인구과잉도시'(O-squared cities, 인구가 제곱으로 늘어나는 도시)로부터 벗어났다. 도시인구가 3000만 명이 넘는 인도 뭄바이, 나이지리아 라고스, 방글라데시 다카 등 26개 인구과잉도시들이 아메바군집처럼 놀라운 속도로 번식과 팽창을 반복했지만, 서울은 속도조절에 성공한 듯 보였다.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포함한다면, 서울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인구과잉도시'이겠지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