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훈]세계를 가슴에 품자

  • 입력 2009년 7월 7일 20시 09분


모친상을 당해 귀국한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은 6일 빈소를 찾은 김경한 법무장관을 반갑게 맞았다. 송 소장이 오후 11시가 넘은 시간에 온 김 장관을 어느 조문객보다 반갑게 맞은 데는 이유가 있다. ICC 소장 선거를 앞둔 지난해 10월 김 장관은 네덜란드 헤이그를 방문해 16명의 재판관을 만찬에 초청했다. 김 장관은 만찬에 오지 못한 재판관들은 따로 만나는 성의까지 보였다. 송 소장의 예에서 보듯 국제기구의 장이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때로는 정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지원도 필요하다.

日, 주요국제기구 수장 5명 배출

일본이 며칠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배출했다. 일본 주요 신문들은 관련기사를 일제히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아시아인이 사무총장에 오른 것은 52년 만에 처음이라 일본 열도는 더욱 흥분한 것 같다. 5개월 전 국제사법재판소(ICJ) 소장에 이은 아마노 유키야 씨의 IAEA 사무총장 선출로 주요 국제기구 수장을 맡고 있는 일본인은 유네스코 사무총장, 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 아시아개발은행 총재 등 5명으로 늘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절치부심하며 국력을 키웠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국제기구 분담금(약 1000억 엔)을 내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일본 사회는 국제사회에 눈을 돌렸다. 많은 일본인이 국제기구에 진출해 유엔본부와 산하기관 전문직에만 108명(2007년)이 근무한다. 이 수를 300명까지 늘리겠다며 범정부 차원의 지원 기구까지 만들었다. 유엔과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한국인(2009년 6월·뉴욕 유엔본부 사무국 66, 산하기구 37, 전문위원 58명)도 적지 않다. 국장급 이상도 19명이나 된다. 그러나 일본에 비해 국제기구 진출을 준비하는 사람은 훨씬 적다고 한다. 이들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여전히 열악하다.

일본은 자민당 장기집권으로 정치와 관료사회가 안정돼 있었다. 그래서 축적된 인맥과 경제력으로 국제기구에 자리가 나면 총력외교를 펼친다. 반면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 인력이 자주 교체됐다. 국가의 연속성이라는 차원으로 접근하지 못한 근시안 때문이다. 어느덧 일본은 패전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까지 꾀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있다. 얼마 전 그는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그 즈음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6월 11일자)’와 외교안보전문지 ‘포린폴리시(7, 8월호)’, ‘뉴스위크(일본판)’에서 그를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글이 꼬리를 물었다. ‘너무 신중한 처신이 빌미를 제공했다’, ‘서구중심주의 때문이다’라는 해석들이 나오기도 했다. ‘외우(外憂)’도 극복해야 할 과제지만, 언젠가 그에게 닥칠 내환(內患)이 더 걱정이다.

몇 개월 전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그는 2위를 차지했다. 2012년 대선은 아직 3년 5개월이나 남았다. 그러나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우리 풍토에선 그를 국내정치의 우물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흐름이 벌써 엿보인다. 유엔 사무총장은 외교관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최고의 자리다. 또 앞서 사무총장을 지낸 7명 중 6명이 연임에 성공했다. 비토 세력이나 대과(大過)만 없으면 반 총장도 연임할 수 있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한국이 유엔 사무총장을 다시 배출할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 반기문총장 연임 도와야

글로벌 시대를 맞아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국제기구의 역할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국제적 안목과 교양, 외국어 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더 많이 길러 국제기구로 보내야 한다. 그럴 수 있으려면 정치권은 반 총장을 놓아둬야 한다. 2년 6개월 뒤 총력외교를 펼쳐 연임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마라톤으로 치면 그는 반환점이 아니라 이제 10.5km를 겨우 넘고 있는지 모른다. 갈 길이 멀다. 반 총장부터 세계를 가슴에 품어야 한다.

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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