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핵 포기’ 남아공과 ‘핵 무장’ 北

  • 입력 2009년 6월 26일 20시 00분


북한은 내년 6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서 열리는 월드컵축구대회 출전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축구 실력이 아니라 북한의 핵이 문제다. 남아공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보유 핵무기를 자발적으로 폐기했다. 그런 나라에서 열리는 지구촌의 평화제전에 유엔과 맞서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이 참가할 명분과 위신을 갖추었는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핵포기가 남아공 살렸다

남아공은 1970년대 초부터 핵무기 개발을 시작해 1979년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만들었다. 1982년에는 항공기 투하용 핵무기까지 개발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 공격을 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남아공의 핵을 거꾸로 돌린 인물은 1989년 9월 14일 대통령으로 당선된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였다. 그는 취임 직후 핵무기 폐기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을 이른 시일 내에 달성할 수 있는 계획서 작성을 지시했다. 2주 뒤 출범한 정부 위원회는 치밀한 준비과정을 거쳐 1990년 1월 핵무기 폐기 일정을 만들었다. 역사적인 핵 폐기는 한 달 뒤 농축우라늄 공장 가동 중지로 시작됐다.

남아공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도 자진해서 수용했다. 1991년 7월 NPT 가입에 이어 2개월 뒤 IAEA 안전조치협정에 서명했다. IAEA는 그해 11월부터 2년 반 동안 남아공의 모든 핵관련 시설에 대해 100여 차례의 사찰을 실시했다.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1993년 3월 의회 연설을 통해 “남아공은 핵무기 6개를 생산해 보유했으나 모두 폐기했고 개발 정보도 모두 파기했다”고 전 세계에 알렸다. 그는 넬슨 만델라와 함께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남아공도 북한처럼 ‘벼랑끝 전술’ 차원에서 핵개발을 추진했다. 악명 높은 흑백 인종차별 정책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무기금수(禁輸)와 경제제재를 당하자 고립을 탈피하고 핵 확산 방지를 주도하는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핵에 도전한 것이다. 인근 앙골라에 주둔한 쿠바군과 구소련의 앙골라 모잠비크 그리고 남아공 저항세력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대한 군사지원을 심각한 안보위협으로 과장해 핵개발의 핑계로 삼았다.

그러나 남아공을 살린 것은 핵무장이 아니라 핵 포기였다. 남아공은 핵을 버린 덕분에 흑백의 화합을 일궈냈고 국제사회와 화해했다. 남아공이 핵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아프리카 최초의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영광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이란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어 북한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결정적으로 도와준 박지성 선수의 왼발은 북한에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 북한은 6·25전쟁 발발 59주년인 그제 “핵 보복의 불소나기가 남조선에까지 들씌워지게 하는 참혹한 사태를 자초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를 협박했다. 동족을 향해 핵 공격을 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북한을 남아공 국민과 세계인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 축구팀은 남아공에서 반핵 시위대를 만날 가능성이 크다.

北,월드컵서 反核시위 부를 건가

더구나 북한은 남북관계를 멋대로 끌어들여 월드컵 축구를 오염시켰다. 북한은 평양에서 치러야 할 두 차례의 남북한 경기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게 만들었다. 북한 정권은 애국가와 태극기가 평양에서 울려 퍼지고 휘날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들은 월드컵 축구를 남한 불인정을 선전하는 정치적 도구로 삼았다.

북한은 이제라도 남아공의 핵 포기 사례를 공부하길 바란다. 핵무장을 고집한 채 월드컵 본선에 나가 개최국 남아공과 세계를 우롱할 것인가, 핵 포기로 방향을 바꿔 박수를 받을 것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택에 달려 있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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