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룰라 모델, 캐머런 모델, MB 모델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8분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64)은 국민 81.5%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현지 조사기관 CNT가 최근 발표했다. 헌법을 고쳐 ‘3선 대통령’을 만들자는 여론이 확산될 정도다. 그는 뉴스위크지 인터뷰에서 “경제성장과 함께 소득분배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2002년 10월 중도좌파 노동자당 후보로 당선된 룰라는 좌파에 흔한 반(反)시장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고, 시장경제 활성화로 국부(國富)를 늘리며 과감한 빈곤층 지원으로 중산층을 키웠다.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되 시장 효율성을 높여 좀 더 많은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자고 좌파를 설득하며 국론을 모았다. 그는 반대파를 모욕하지도, 싸우지도 않으면서 과거 우파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을 때 약속한 재정안정 정책, 규제개혁, 경제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덕분에 브라질은 최근 30년래 최고성장을 기록했고 일자리가 늘었다. 공공부채는 2002년 국내총생산(GDP)의 55%에서 2009년 35%로 줄고 수출은 4배로 늘었으며 빈곤층 가운데 2000만 명이 가난에서 벗어났다. 룰라는 자녀를 반드시 학교에 보내야 생계비를 지원하는 복지제도인 ‘보우사 파밀리아’를 실시해 빈곤층의 자립의지와 미래 경쟁력을 키웠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평가했다. 좌파 출신 룰라가 우파의 시장주의로 브라질을 살렸다면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43)는 사회적 약자 보호, 복지와 환경 중시 등 좌파적 가치를 접목시킨 새로운 보수 모델을 제시한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 공화당에 내년 영국 총선에서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캐머런 모델을 배우라고 촉구한다.

캐머런은 방향을 잃고 헤매던 보수당을 2005년 말 떠맡은 뒤 “빈곤을 줄이고 사회적 정의를 찾는 일을 우리가 한다”며 “우파가 새로운 진보”라고 선언했다. 그는 시장과 효율을 강조해 영국병을 치유했던 대처리즘으로 지속적 성장을 꾀하면서 그 열매를 고루 나누겠다고 밝혔다. 방법은 이념 아닌 실용주의다. 교육, 의료, 복지의 민영화로 서비스의 질을 높이면서 기업과 노조에는 가족친화적 고용으로 웰빙지수를 높이자고 호소한다. 무조건 감세(減稅)나 작은 정부가 아닌, 정부의 역할 강화에 시장의 활력을 조화시키는 중도다. 캐머런은 교육개혁도 강조하는데, 학교 간 경쟁과 학교선택권 확대를 통한 경쟁력 높이기가 기본방향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1970년대 한국과 브라질의 1인당 국민소득은 비슷했는데 지금은 한국이 브라질보다 4배 많다”며 교육이 그 이유라고 했다. 브라질 교육의 최대 걸림돌은 개혁을 거부하는 교원노조다. 이 나라 교원노조는 성과급 제도는 물론이고 교과서대로 가르치라는 정부 정책에도 저항한다. 브라질이 교육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고는 선진국 진입도 어렵다는 진단이 일반적이다.

브라질이 부러워한 우리나라 교육이 지금은 거꾸로 브라질을 닮고 있다. 전교조에 휘둘릴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조차 관치와 규제, 하향평등 지향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특목고 입시에서 내신 반영을 금지하려는 것이 그런 예다. 서민과 중산층의 허리를 휘게 하는 사교육비는 줄여야 하지만, 내신 반영 금지는 수월성(秀越性) 교육과 멀어지는 처방이다. 우리 교육의 세계적 경쟁력과 다양성을 높이겠다던 다짐을 스스로 허무는 교육정책이 득세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환경의 어떤 변화에도 대처하려면 ‘인재 육성’이 최대의 숙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그럼에도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민생대책이 본연의 교육정책을 압도해 버리는 양상이 가속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새로운 경제모델을 찾으려는 모색이 세계적으로 활발하지만 ‘탈규제, 경쟁 강화’ 등 이명박 정부가 1년 반 전에 제시했던 국정기조는 크게 보아 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반대세력의 일방적인 정권 흔들기에 피곤해진 정부가 국정기조를 사실상 반대세력의 비위에 맞게 비빔밥화(化)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일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인하는 가운데 각론에서 정책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지금 국내에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세력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적 가치를 지키려는 쪽과 이를 흔드는 쪽의 산술적 중간이나 원칙 잃은 혼합이 ‘중도(中道)’일 수는 없다. 중도 실용을 강조하고 나선 MB 모델이 새로운 시험대에 섰다. 정치의 상당 부분이 레토릭(수사·修辭)이지만, 레토릭의 부메랑도 원려(遠慮)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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