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희수]이슬람과 ‘발전 패러다임’ 공유를

  • 입력 2009년 6월 17일 03시 00분


탈레반을 탄생시킨 파키스탄의 산악지대에서 위험을 무릅써 가며 87개의 학교를 세워 교육이라는 씨앗을 통해 테러의 근본적인 원인과 싸우는 그레그 모텐슨 박사의 이야기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 이슬람권에 대한 개발협력 사업의 방향과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일화다. 이슬람 국가는 테러와 전쟁에 시달리면서도 국가 발전과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남다른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이고 있다. 특히 파괴적인 전쟁을 통한 테러 근절보다는 가난과 무지를 일깨워 테러 없는 안정적인 사회를 만드는 일이 훨씬 효율적이고 절실하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슬람 세계는 57개국에 인구만 14억 명에 이른다. 중동의 산유국도 있지만 이슬람 인구의 약 70%가 우리의 이웃인 아시아에 분포하면서 가난과 저개발에 시달린다. 이제는 이웃 이슬람 국가와의 경제협력에 남다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한다. 종교와 이념의 벽을 뛰어넘는 국가 간 협력과 글로벌 시민의식의 함양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보아야 할 때다.

이슬람권에서 보면 한국은 정서적으로 친근하고 문화적으로 가까움을 느끼는 나라다. 동경하면서도 경계하는 서구문명과는 달리 한국의 발전모델에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오랜 전통과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면서 경제발전과 첨단과학 수준을 이룩한 한국의 성공을 부러워한다. 이슬람인은 1970, 80년대에 연인원 100만 명이 넘는 우리 근로자가 열사의 땅에서 24시간 3교대하면서 쌓아올렸던 성실과 근면을 신화처럼 기억한다.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그들과 등을 진 일이 없어서 코리아라는 브랜드는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최고 가치를 발휘한다. 정보기술(IT) 가전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국제품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고 ‘겨울연가’ ‘대장금’ ‘해신’ ‘주몽’으로 연결되는 한류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그들은 한국형 개발 모델을 원하고 한국의 발전 경험을 배우고 싶어 한다. 이슬람권 유엔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슬람회의기구(OIC)가 한국과의 교육 과학 기술 문화 협력을 적극적으로 제의해 온 일도 고무적이다. 이슬람권과의 개발협력을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조건이 있다.

우선 이슬람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수다. 그들은 종교와 삶이 일치된 시스템에 익숙해 세상을 보는 관점, 음식과 주거, 인간관계의 방식에서 독특한 문화를 유지한다. 원조의 유효성에 관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는 2005년 “원조의 효과성에 관한 파리 선언”을 발표했다. 일방적이고 일회적인 긴급구호 수준을 넘어 원조를 받는 국가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중장기적인 전략이 마련된 지속 가능한 개발 지원이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 그들 스스로 자신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발전의 패러다임을 찾아가도록 유도하고 이끌어주는 방식의 지원과 협력 체계의 정립이 중요하다.

이슬람 국가에서의 개발협력 사업은 보수적이고 급진적인 이슬람의 틀을 벗고 글로벌의 보편적 가치에 동참하고 기여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그런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 아시아재단이 방글라데시에서 벌이는 이맘(이슬람 종교지도자) 트레이닝 아카데미 지원이 좋은 예다. 영향력 있는 지역 지도자인 이맘에게 지역발전 문제를 제기하고 현지 파트너와의 협력을 통한 사업으로 지역 민주주의와 인권 보호, 여성의 사회적 참여와 환경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하고 해결토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극단주의와 민중 불만의 온상으로서의 이맘 양성소가 아니라 가장 적극적인 사회 발전의 산실로서 기능하도록 지원하고 협력적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그들이 우리를 원할 때 우리는 달려가야 한다. 지금이 그때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교수 한국중동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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