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사승]미디어가 대화하는 법

  • 입력 2009년 6월 11일 02시 55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결말은 당분간 우리 사회의 골을 더 깊게 파놓을 것으로 보인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해석의 차이가 너무 크다. 어느 것이 맞느냐의 논의가 아니다. 선악의 차원이 아니다. 전혀 다른 화두에 매달려 있다. 누구도 직면하기 싫은 두려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갈라짐이 갈 데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는 여느 유기체처럼 자기 치유력을 갖는다. 이제 여기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분열보다 더 절망스러운 점은 여기까지 왔다는 자괴감이다.

사회적 자기 치유를 위해 대화만 한 방법도 없다. 정치학자들은 늘 민주주의는 대화라고 말해 왔다. 대화를 통해 사람은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고 믿는다. 물론 개인 사이의 대화만으로 이런 거창한 일이 가능하지는 않다. 대인커뮤니케이션은 자기주장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문제를 오도하고 오해를 낳으며 논리 비약이 등장할 수 있다. 일방적인 주장과 무조건적 침묵을 초래할 수도 있다. 별다른 규칙도 규제도 없어서이다. 이런 식의 대화로는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화에 대한 기대를 미디어로 넘긴다. 저널리즘을 비롯해 미디어가 창출하는 다양한 유형의 담론들이 숙의민주주의를 위한 대화를 수행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대중과 소통 안해 신뢰 상실

과연 그런가. 지금 신문이나 방송은 제대로 대화하는가. 진정으로 대화를 원하는가. 대화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나 한가.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다. 저널리즘 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신뢰 붕괴다. 독자와 시청자가 언론을 믿지 않는다. 언론보도에 불신을 나타낸다. 이유를 찾아 들어가면 반드시 맞닥뜨리는 요인이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의 폐쇄적, 독점적 뉴스 생산구조다. 폐쇄적, 독점적, 엘리트주의적이라는 말로 형용되는 프로페셔널리즘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독백이다. 대화의 반대이고 대화의 거부다. 그냥 자기 세계에 묻혀서 자기들만의 언어로 주고받는다. 이러니 사람들은 미디어가 무얼 하든 저희들끼리 찧고 까부는 것으로 치부하고 만다. 숙의민주주의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의 가슴을 치게 만든다.

대화는 동질적 대화와 이질적 대화로 나눌 수 있다. 또 사교모델과 문제해결모델이 있다. 같은 부류끼리의 대화는 대개 사교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대화는 자기 고집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만 한다. 반대로 이질적 요소 사이의 대화는 문제해결을 위해 추진된다. 동조만 있는 사교모델과 비교하면 대화하는 모양새가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 다름을 드러내야 하고, 갈등을 직시하되, 해결책을 찾기 위해 타협해야 하는 과정이 결코 편할 리 없다. 숙의민주주의가 바라는 대화는 문제해결을 위한 이질적 대화다.

미디어가 이런 대화를 잘하려면 세 가지 과정을 잘 거쳐야 한다. 먼저 사람하고 대화를 잘 해내야 한다. 기자가 취재원을 만나고, PD가 길거리 인터뷰하는 일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질적 사람 사이의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취재원과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만 내세우는 대화는 사교에 불과하다. 다음은 사람끼리 대화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사람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껄끄럽지만 이야기를 나눠야만 하는 내용도 다루어야 한다. 정치적 지향성에 빠져 자기편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하는 식으로는 이런 대화를 해내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미디어와 시민의 대화다. 시민 사이의 대화를 다시 미디어에 담아내야 한다. 피드백하라는 말이다. 이때 한 걸음 나아간 내용을 제공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미디어 사이의 대화도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겪는 갈등은 일정 부분 미디어의 책임이다. 미디어가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갈등을 확대 재생산한다는 지적을 거부할 수 없다. 많은 미디어가 견고하게 자신만의 성을 구축하고 자기세계에 머물면서 진지전을 펼쳐 왔다. 더 많은 사람을 진지 안으로 끌어들여 그곳에만 머물도록 하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자기편을 늘리고 상대편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세력다툼의 양상이 심해진다. 사정이 이러니 파벌적 동질화는 강화되고 이질성의 해소는 점점 더 멀어진다.

언론사 사이트 서로 링크해야

진지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인터넷이다. 열린 세상이 테제인 인터넷을 진정으로 열어놓는 것이 링크다. 공간을 마음대로 넘나들고, 공간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링크는 오프라인의 폐쇄성을 단숨에 극복한다. 우리의 미디어는 절대 서로를 링크하지 않는다. 이용자가 빠져나가 수익이 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사람들이 더 많은 이해를 가지고 궁극적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기 바란다면 링크해야 한다. 자기주장에 자신 있다면 링크할 수 있다. 단절과 대립이 아닌 소통과 대화를 위해 그들에게 링크의 손을 뻗치기를 권한다.

김사승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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