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동원]위대함에서 추락까지

  • 입력 2009년 5월 27일 02시 49분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이라고 번역된 짐 콜린스의 ‘Good to Great’.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올라서기까지 그들의 동력과 배경을 현장분석 방식으로 눈썰미 있게 풀어 한국에서도 꽤 인기를 끈 책이다.

요즘 세계 유력기업 중 좌초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그 때문일까. 거대기업의 추락과정을 살피는 이른바 ‘Great to Fall(위대함에서 추락까지)’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제공했던 패니메이 서킷시티 등 업종 대표기업이 잇달아 좌초한 데 따른 여파다. 돌이켜보면 기자도 생생한 사례를 옆에서 지켜본 적이 적지 않다.

#7년 전 겨울. 바람이 차갑기로 유명한 미국 디트로이트의 GM 본사에서였다. 기자가 자동차 실린더를 연상케 하는 본사 건물이 독특하다고 말한 것은 인터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덕담이었다. 이 말이 나오자마자 GM 고위 간부들은 처음부터 거칠 것이 없었다.

“이곳을 Great Monument(GM·위대한 기념탑)로 만들 겁니다.”

당시 세계 자동차업계를 쥐락펴락했던 거물들이었다, 원래 회사명(General Motors) 대신 Great Monument로 재치 있게 뜻을 바꾸는 자신감이 사뭇 인상적이었다. 릭 왜거너 당시 최고경영자(CEO)도 자리를 함께했다. 간부 중 누군가가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이제 GM에 좋은 것은 세계에 좋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자 기분 좋은 웃음도 터져 나왔다. 당시는 대우그룹 몰락으로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처지였던 대우자동차를 GM이 인수하려던 때였다. 세계 경제계가 GM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할 때라 영화(榮華)는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기세였다.

#미국 제조업계의 심장으로 불렸던 GM 수장이 얼마 전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미국 의회 청문회에 불려가 머리를 숙이는 모습이 생생하게 중계됐다. 10년도 안 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GM 씨티그룹 AIG는 각 분야에서 ‘상징기업’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가 몰려오면서 SOS(긴급 구제요청) 대상으로 처지가 뒤바뀌었다.

짐 콜린스는 기업에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오는 단초를 ‘성공에 대한 자만심(hubris)’에서 찾았다. 일본 자동차와 한국의 현대차 등이 연료소비효율이 좋은 자동차 개발에 전력을 쏟을 때 미국 업체들은 연비가 떨어져도 폼이 나는 중대형차를 앞세우며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 좋은 예다.

‘그저 좋은 것은 위대함의 적’이라는 말도 있다. 끊임없이 혁신하지 못하면 부패와 유혹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요즘 경영학에서는 실패한 기업 사례와 공룡의 멸종 과정을 곧잘 비유하는 일명 ‘공룡학’이 주목을 받고 있다. 피터 드러커 같은 경영학 대가들이 “타성이 조직의 의사결정을 지배하면 ‘퇴출의 문’은 저절로 열린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다 건너에서만 볼 수 있는 사례는 아니다. 아직도 대마불사를 믿는 한국의 대기업과 은행이 정말 없을까. 온실 속에 안주해 온 우리의 공기업의 실상은 또 어떤가. 한국의 정계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제는 ‘한국판 공룡’은 없는지 세심히 살펴볼 때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위대해지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길은 분명히 있다.

김동원 국제부 차장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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