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성한]미·중·일 협력과 한국의 네트워크 외교

  • 입력 2009년 5월 19일 19시 53분


동북아시아에서 미국 중국 일본이 엮어내는 삼각관계는 매우 흥미롭다. 다른 두 나라가 자신을 향해 ‘담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으면서도 상호 협력의 필요성을 공통적으로 느끼는 관계다. 미중 관계에 대한 일본의 인식은 미중이 일본을 제치고 동아시아에서 양자구도를 정착시킬지 모른다는 의구심으로 요약된다. 미국이 1971년 7월 15일 일본과 사전 상의 없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계획을 발표하자 일본은 이른바 ‘닉슨 쇼크’에 빠졌다. 1998년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중국에서 미중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선언하고 귀로에 동맹국 수도인 도쿄를 거치지 않고 워싱턴으로 돌아갔을 때도 일본은 충격을 받았다.

미일 관계에 대한 중국의 인식 역시 편치 않다. 중국은 그동안 주일미군이 일본의 대외전략을 ‘순화’시켜온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이 일본의 역할 강화를 유도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부추기고 미일동맹의 활동 폭을 넓히는 것에 반대한다. 미일이 힘을 합쳐 중국의 부상을 ‘봉쇄’하려 한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삼각대화’ 전략적으로 판단을

한편 중-일 관계에 대한 미국의 인식에는 중국과 일본이 미국을 배제한 형태의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제도화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내재돼 있다. 1990년 말레이시아가 일본의 리더십을 전제로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 창설을 제안한 일,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 일본이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을 주장한 것, 그리고 2005년 말레이시아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을 멤버로 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제안한 것 등은 미국을 배제한 형태의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발현이었다. 태평양 국가인 미국은 중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제도화를 용인하지 않기로 하고 이 모든 제안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렇듯 질투와 의심으로 점철된 미-중-일 삼각관계가 최근 들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눈부신 경제발전을 통해 자신감을 축적한 중국은 최근 미일이 자신을 봉쇄하려 한다는 콤플렉스를 떨쳐 버리고 ‘미-중-일 삼각대화’를 제의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미국과 일본이 이를 내심 환영하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일본은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고 있는 작금의 사태를 바라볼 때 미중 양자구도가 고착화하기 전에 미-중-일 삼각협력관계를 정착시킬 필요를 느낀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외교안보 담당자들 역시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는 미-중-일 협력이 필수라고 보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쯤 되면 한국으로선 미-중-일 삼각대화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문제가 한국의 참여 없이 강대국들 간의 ‘밀실 담합’ 형태로 다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운명이 강대국 간의 ‘체스 게임’으로 결정된 사례가 있었기에 이런 걱정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더 냉철하게 전략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미-중-일 간의 협력이 필수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들 세 나라가 한반도 문제를 (자기들끼리 은밀히 다루기도 전에) 마음대로 ‘재단(裁斷)’할 것으로 단정하고 극도의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콤플렉스 외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이 미-중-일 삼각대화를 제의한 것도 미일동맹이 중국을 봉쇄할 것이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한(혹은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사고의 소산이다.

따라서 우리는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미-중-일 삼각협력의 제도화 움직임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장관이나 차관이 아닌 그 아래 수준(차관보)에서 대화를 시작한다’ ‘한반도 위기와 같은 전통적 안보문제보다는 환경, 마약, 인간 밀매, 해적 등과 같은 비전통적 안보문제부터 다루고 점차 전통적 안보문제로 옮아간다’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경우 반드시 한국과 함께 논의한다’ 등이다.

한국 주도 ‘협력 틀’ 발전시켜야

한국은 이 같은 세 가지 원칙을 견지하면서 미-중-일 삼각협력이 공식화할 경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 나름의 삼각협력, 즉 한미일, 한중일 협력, 더 나아가 한-미-중 협력을 제도화하고 주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21세기는 ‘네트워크 외교’의 시대다. 강대국 간 협력을 대놓고 반대하기보다는 자신감과 창의력을 가지고 우리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에 힘쓰는 것이 바로 ‘글로벌 코리아’ 외교다.

김성한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 ksungha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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