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배호순]평준화정책 개혁해 사교육 근절을

  • 입력 2009년 5월 12일 02시 58분


시기적으로는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교육 당국이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 주목을 받고 있다. 국민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아니라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사교육 대책을 주관한다고 하니 약간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크게 환영하거나 기대감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예상치 못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까 또는 기존과 같이 유명무실한 조치가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현재까지 보도된 바에 따르면 당국이 준비하는 사교육 대책이 국민에게 기대와 희망을 주는 면이 있지만 새로운 우려를 안기는 감도 없지 않다. 과거 여러 정권에서 ‘교육대통령’을 표방하면서 내세웠던 사교육비 대책이 공약(空約)에 그쳤던 경험이 있기에 국민은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이번 대책을 액면대로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 이번 정부가 ‘사교육 절반’이라는 선거공약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고 있지 않은지, 그로 인해 교육의 본질을 경시하지 않을지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과거 정부에서 구호에만 그친 사교육비 근절방안은 결과적으로는 보기 드문 사교육 대기업을 창출시켰고 사교육이 더 강성하도록 방조하는 동시에 면역력을 키우도록 돕는 역할만 했다. 그동안 선거공약을 의식해서 사교육비를 포함한 여러 교육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거나 변화시키려는 처방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가시적인 대증요법이나 단편적이며 행사 위주로 접근했었기에 문제가 더욱 커졌다. 또 교육문제의 대부분이 고질화된 평준화 정책에 기인한다는 점을 파악했으면서도 단편적인 처방만을 취해 왔기에 사교육은 여전히 위세를 떨친다고 봐야 한다. 사교육의 창궐 배경에는 학교교육의 부실화가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부정하기 어려운데도 사교육만을 겨냥한 요란하고 가시적인 미봉책만 내놓지 않을까 우려된다.

당국은 국민의 기대와 우려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과거 정권이 범했던 시행착오를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국민이 사교육 문제에 근본적으로 접근하도록 요구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해 사교육에 대한 요구가 어떤 경로를 통해 발원됐고, 사교육이 왜 창궐하게 됐는지, 어떻게 해서 사교육이 내성을 갖게 됐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공교육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대기업으로 성장했는가에 대하여 더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학교교육의 부실화에는 직접 손을 대지 못하면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접근논리는 결국 질병의 원인을 알면서도 근원적 처방에는 관심이 없고 대증요법으로 가시적인 효과에만 관심을 갖는 의사와 같다고 보아야 한다. 부실화된 학교를 어떻게 되살리느냐, 붕괴된 교실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서 교원과 학교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접근해야만 근원적 처방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 장기적으로는 대통령이나 장관이 바뀌어도 지속적이며 일관성 있게 학교 살리기에 초점을 둔 정책과 처방이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해 둔다.

한마디로 당국은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학교선택권을 확대하며 평준화정책의 창조적 개혁을 통해 공교육을 살리는 방안이 사교육비 절감 방안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기본 전제로 삼고 출발해야 한다. 35년간 신봉한 평준화정책의 발전적 개혁을 도모하는 동시에 미래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 양성에 적절한 미래 교육 청사진을 제시하는 일에 우선적인 비중을 두면서 사교육 대책과 교육정책을 조화롭게 연계해 추진해야만 기대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배호순 서울여대 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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