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아직은 불안한 평화

  • 입력 2009년 5월 11일 02시 57분


“서울 국제모터쇼에서 선지를 뿌린 일이 사회적으로 좋게 비친다고는 저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자동차회사 비정규직 사원들이 한 일인데요.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한번쯤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주는 상황에서 항변도 못하고 잘려 나가는 비정규직의 설움을…. 지도부가 계획한 일은 아니지만 그 때문에 민주노총이 욕을 먹는다면 달게 받겠습니다.”(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신승철 사무총장)

“‘일자리 나누기’와 관련해 비판과 걱정이 많습니다. 어려울 때 구조조정을 해야 경기회복기에 다른 나라 기업들과 경쟁할 텐데 남의 눈치 보느라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고요.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무겁고, 노사신뢰와 고용안정이 장기적으로는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는 관점에서 참여하고 있으니 기업들의 고충을 이해해주십시오.”(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부회장)

7일 제주도에서는 뜻 깊은 토론회가 열렸다. ‘경제위기 상황의 일자리 창출과 노사안정 방안’을 주제로 노동부 정종수 차관, 경총 김 부회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백헌기 사무총장, 민주노총 신 총장이 차례로 발표와 질의 토론을 하는 자리였다. 노사정의 대표 격인 4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오랜만이다. 올 2월 23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문이 발표됐으나 이때 민주노총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주최한 ‘2009 언론사 사회·산업부장 세미나’에서 오랜만에 만난 노사정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비판과 해명을 쏟아 놓았다. 때로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위해 스스로의 몫을 양보한 적이 있느냐” “젊은이들이 인턴 임시직 등을 전전하면 나이가 들어 취업 자리마저 없어진다. 인턴제도 활성화가 되레 젊은이들을 궁지로 몬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등 날 선 질문도 많았다.

또 4시간이 넘도록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노사정은 상황 진단과 일자리 창출 방안에 대해 여전히 큰 의견차가 있음을 드러냈다. 정부 측은 “상황이 워낙 어려운 만큼 단기, 저임금 위주의 일자리 창출도 필요하다”고 고충을 토로했지만 노동계는 “공공 부문 인력을 감축하고 단기, 저임금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맞섰다.

하지만 토론회 초반에 “오늘만큼은 서로 비난하지 말고 대안 제시에 충실하자”고 다짐한 노사정 대표들은 끝까지 감정대립 없이 진지하게 토론에 임했다. 배인준 편집인협회 회장은 “노사화합과 일자리 나누기는 대단히 험난한 과정이지만 오늘 토론회에서처럼 역지사지(易地思之)하고 서로 대화하려는 자세를 현장에서도 유지한다면 희망은 있다”고 기대 섞인 당부로 토론회를 마쳤다.

최근 노사갈등은 많이 줄었다. 올해 들어 4월 말까지 파업 발생건수는 16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1% 줄었고 노사협력선언은 1267건으로 3.3배 늘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위기감과 경제 살리기에 대한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비정규직법 개정, 복수노조 및 노조 전임자 급여제도 개정 등이 본격화되고 기업 구조조정이 현실화하면 이를 둘러싼 노사갈등이 갑자기 폭발할 우려가 있다. 시장경제 원리와 사회통합 사이에 균형을 맞추면서 경제위기를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노사정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겠다.

-서귀포에서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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