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상인]單發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 입력 2009년 4월 29일 02시 59분


‘한 세대 앞을 내다보고 수립된 최초의 국가 장기종합전략’이라며 노무현 정부가 자랑했던 이른바 ‘비전 2030’이 발표된 것은 2006년 8월이었다. 그런데 최근 보도에 의하면 청와대 한 비서관이 노 대통령의 퇴임에 대비하여 불법으로 국고(國庫)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2005년 2월이었다고 한다. 대외적으로 국가의 장기발전계획을 말하기 훨씬 앞서 권력 핵심부 안에서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를 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새삼 노무현 정권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에 전반적으로 얼마나 허망하고 취약한지를 차제에 짚어보고 싶을 따름이다.

지난 정권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사뭇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령 대통령 직속으로 미래기획위원회라는 것도 생겼고 정부조직 개편과 함께 새로 발족한 기획재정부는 과거 경제기획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현 정부가 하고 있는 각종 미래구상이 향후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쉽게 장담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1987년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은 무조건 5년 단임이다. 그러니 재임 중 단기 업적에 몰입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이다. 설령 국정의 장기계획을 마련하더라도 그것은 스스로 책임질 몫이 아니다. 차기 정권에 승계될 가능성 역시 사실상 없다.

단임시대, 당대주의, 단타사회

대통령 임기 5년은 헌법 사항이기에 그나마 긴 편이다. 민주화 이후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아진 때문인지 장관의 임기는 점점 짧아져 최근에는 채 1년이 되지 않는다. 언필칭 백년대계를 다룬다는 교육부의 경우, 역대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 2개월에 불과했다. 관료들의 입지라고 결코 낫지 않다. 교육부 실·국장들이 한자리에 머무는 기간은 평균 1년 1개월이며 과장들은 겨우 열 달 정도다. 입법부도 사정은 비슷하다. 초선의원 비율이 2004년 제17대 국회에서는 63%였고 4년 뒤 제18대에서도 46%인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국가의 미래에 임하는 준비 자세가 부실하기로는 정부와 국회가 피차일반이다.

비록 민주주의가 아쉽긴 하지만 이승만 집권 12년은 건국의 기초를 다졌고, 박정희 집권 18년은 부국(富國)의 발판이 되었다. 싱가포르의 기적은 리콴유(李光耀) 총리의 30여 년에 걸친 재임 결과다. 그래서 장기독재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다만 유능한 정권의 합법적인 장기통치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일은 어리석다는 말이다. ‘영국병’을 치유한 마거릿 대처는 11년 반 동안 총리였고, 대공황과 전쟁 시기 미국에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예외적으로 4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 총리들의 재임기간이 평균 2년이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 노벨평화상 수상자 사토 에이사쿠처럼 7년 8개월 동안 장기집권한 일도 있었다.

한 사회의 미래를 담보하고 개척해야 할 또 하나의 축, 대학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사정이 밝지 않다. 대학들이 당대(當代)주의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총장 직선제가 절대선인 양 치부되면서 총장이 연임하는 경우는 지극히 이례적이다. 총장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기 위해 출마자 연령제한까지 하는 대학도 허다하다. 20년 이상 하버드대를 이끌었던 데릭 복 총장도 ‘학원 민주화’를 중시하는 우리 기준에서는 나올 수 없다. 미국 대학 총장들의 평균 임기는 12년 이상이라는데, 1991년 직선제 채택 이후 서울대 총장은 현재 여섯 번째다.

장기적 준비 설 땅 잃어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단임정신과 당대주의는 궁극적으로 학문 세계조차 단기적 업적주의로 몰아간다. 대학의 리더십마저 포퓰리즘에 영합하여 몇 년 안에 세계적 명문 반열에 들겠다는 대학이 국내에 수십 개다. 직선제 총장일수록 대학의 발전을 외형적 지표와 과시적인 성과에 둘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 결과, 지성에 대한 평가로 계량적 잣대가 독주하는 가운데 학자적 숙성과 학문적 온축(蘊蓄)에 필요한 장기적 준비나 인고의 미덕은 점차 설 땅을 잃고 있다.

사회 도처에서 미래 담론이 부쩍 활발해진 요즘, 그것 자체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반갑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미래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우리의 제도적 기반과 문화적 관행은 너무나 척박하다. 민주주의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대신 우리 사회의 호흡과 시야는 크게 짧아진 탓이다. 단발(單發) 단타(短打)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전상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sang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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