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명승]국군장교들, 더 지혜롭고 더 용감해야

  • 입력 2009년 4월 23일 02시 58분


육군사관생도 15기는 6·25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1955년 7월 입교해 1959년 소위로 임관했다. 54년 전 청운의 꿈을 안고 화랑대 문을 두드렸지만 야망도 이상도 한순간이었다. 입교와 동시에 시작된 기초 군사훈련은 실로 혹독했다. 배가 고파 건빵과 물로 배를 채우고 육사혼(魂)을 외치면서 폭염 속에서 행군했다. 영하 15도의 혹한에서 지금의 태릉골프장 연못 살얼음을 깨면서 선착순으로 뛰어들었던 ‘모진 기합’을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내무반에 난로를 피우느라 얼어붙은 고무호스 기름을 입으로 빨아들이던 고통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나라가 처한 안보환경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소 다를 수 있지만 민족의 최대비극 6·25전쟁이 일부 전후세대에 ‘북침 전쟁’으로 인식되는 현실은 참으로 우려스럽다.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촛불시위를 주도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같은 집단 중에는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조국을 저주하고 대한민국 얼굴에는 침을 뱉으면서 김일성 얼굴은 화장 분칠을 하는 좌(左)편향 교과서를 선택한 고등학교가 40%나 된다니 북의 남침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다 죽어간 선배들을 뵐 낯이 없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햇볕정책이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혈세가 동원되어 북한이 핵폭탄을 제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이 무엇 때문에 “군대에 가서 썩어야 하느냐”는 반군(反軍)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좌파정권 10년의 취약한 안보환경에서도 우리 조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며 확고부동하게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현명한 언론과 보수단체, 건전한 관료, 그리고 군경과 사관생도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사관생도를 국가보위의 귀중한 존재로 신뢰한다. 중국 일본 러시아 사관생도들의 불타는 야심과 음모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북한의 사관생도들은 적화통일을 외치며 사생결전을 준비한다. 우리 사관생도들이 이들에게 무릎을 꿇는다면 조국의 안위가 위태로워진다. 국제분쟁은 인류 역사와 더불어 영원히 존재한다. 최고의 전략전술가를 꿈꾸는 사관생도는 강하고 뛰어난 지휘역량을 구비해야 된다. 로마가 갈리아를 정복한 것은 로마 군대가 아니라 카이사르라는 지휘관이었다. 그토록 막강한 로마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것도 카르타고의 군대가 아니라 한니발이라는 지휘관이었다.

6·25전쟁의 낙동강 방어선에서 ‘버티든지 죽든지(Stand or Die)’의 방어명령을 하달 받고 우리 병사들은 피로 강물을 이루며 국토를 방어했다. 미 합참이 5000분의 1의 성공률밖에 없다고 비난하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과감한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한국은 김일성에 의해 공산화의 제물이 됐을지 모른다. 정치 경제 사회적 멸망은 일시적이며 재건할 수 있으나 국가의 안보가 무너지면 국가와 민족이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한국 미국 일본의 막강한 군사외교력도 최근 북한의 미사일 전략을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한미 동맹이 더없이 중요하지만 스스로의 강력한 군사력이 없는 국가안보는 모래성임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번영과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고 몸부림치는 조국의 안보는 우리 군의 무한책임이다. 국군의 간성인 장교들은 냉철하면서도 온후하고 섬세하면서도 대범함을 갖춰야 한다. 위군(爲軍) 위국(爲國) 앞에는 옆도 뒤도 돌아보지 말고 미련 없이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이는 지혜와 용기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 군은 육군 소위에서 육군 대장까지 하나가 되어 청사에 길이 빛나는 조국의 방패가 돼야 한다.

고명승 예비역 육군 대장 육사 15기 임관 50주년 동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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