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원우]‘스타 과학자’ 키울 연구경쟁 체제를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57분


해마다 10월에는 과학계에 나타나는 ‘노벨 신드롬’의 두 종류를 볼 수 있다. 하나는 노벨상 수상을 기대했다가 못 받은 외국 과학자들이 부리는 히스테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웃인 일본에서 여러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과학계에서 배출된 사실과 비교하며 우리나라에는 수상자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개탄하는 모습이다. 필자가 3월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화학과에서 노벨상 수상자와 만날 기회가 있어서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서 우리나라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대답은 매우 간단하고 명료했다. “많은 연구비를 우수한 연구자에게 지원하고 기다려라.” 우리 모두가 아는 평범한 내용이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과학재단은 1997년에 1인당 연 10억 원의 연구비를 9년간 지원하는 획기적인 연구 과제인 ‘창의적 연구 진흥사업’을 발표했다. 목적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지식을 지닌 차세대 연구자를 발굴하여 세계 수준의 우수 연구리더로 육성함으로써 우리나라 연구를 이끌어갈 토양을 마련하고, 나아가 핵심 원천기술 및 미래 신산업 창출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모방이 아닌 창조적인 연구를 격려하는 데 있다. 시작부터 현재까지도 많은 과학자에게서 시기와 질투를 받으면서도 우리나라의 기초연구역량을 강화하고 세계적인 연구자를 배출했다고 인정받는다. 이 연구사업을 수행했던, 그리고 수행하는 과학자들이 연구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홍보하는 일은 아마도 피겨여왕인 김연아 선수가 우리나라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에 맞먹는 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연구비를 축소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나는 스포츠와 연예계같이 과학계에서도 스타 과학자가 탄생해야 과학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 변함없이 주장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스타는 언론 플레이만 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실력에서 인정받는 세계적인 리더연구자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미 황우석 박사가 ‘국민과학자’로 탄생해 과학의 발전이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모든 국민에게 안겨주었고, 이로 인하여 과학이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던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비록 아쉬움을 남겨준 사건이지만 과학계에 스타가 존재할 경우 과학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스타 과학자를 키우기 위해 과학자들은 평등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연구경쟁을 유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고교 평준화는 국내 교육계에서 가장 문제시된 정책으로 교육의 질을 하향 평준화시켰다고 대학 교수들이 비평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교수들은 평등해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교수 사회에서 스타가 나오기를 내심 원하지 않는다. 교수가 평등만을 추구할 경우 경쟁력을 잃은 교수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경쟁보다는 평등을 원하는 이유는 주위에 있는 스타 교수의 풍요가 자신을 빈곤하게 느끼도록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스타 과학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잘 정비된 제도를 필요로 한다. 스타 과학자가 자부심을 갖고 연구에 몰두하도록 다양한 종류의 인센티브를 포함한 지원을 아낌없이 해야 한다. 이럴 때 스타 과학자는 젊은 과학자의 ‘역할모델’이 돼 연구에 정진하는 촉매 작용을 한다. 또 과학자 사이에 경쟁을 유발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스타 과학자를 여러 분야에서 한두 명이 아닌 수백 명을 배출할 것이다.

연구 지원 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와 과학재단은 세계 수준의 과학자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리더연구자 지원사업을 강화하여 과학자의 자긍심과 위상을 높여야 한다. 리더연구자에게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해 연구환경을 조성하고 연구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서다. 이 사업으로 우리의 새로운 성장동력인 스타 과학자가 탄생하고 스타 과학자에 의해 세계적인 연구결과가 창출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염원하는 노벨상 수상자가 대한민국 과학계에서 나올 것이다.

남원우 이화여대 석좌교수 생체모방시스템연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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