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상운]‘개성공단 설비이전’ 쉬쉬하는 통일부

  • 입력 2009년 4월 9일 03시 01분


“개성공단 설비 이전은 업계에선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어 저희도 답답합니다.” 남북경협 관련 시민단체인 남북포럼의 김규철 대표는 7일 만난 개성공단 입주업체 사장에게서 이런 푸념을 들었다. 그는 “남북협력기금 등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이날 동아일보의 개성공단 설비 이전 보도가 나가자 통일부는 당일 오전 브리핑을 열고 “반도체부품을 생산하는 10여 개 업체를 일일이 확인한 결과 지난달 9일 이후 생산시설을 이전한 사례는 없다”며 “다만 병마개 생산업체 한 곳이 일부 시설을 국내로 재반입한 사례만 있었다”고 반박했다. 통일부가 본보 보도를 접하고 제대로 실태 파악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해명 자료를 낸 것이다.

기자와 전날 통화한 한 반도체부품업체 A사 대표는 이날도 “반도체 금형설비를 서울로 이전한 바 있다”고 재차 확인했다. 연합뉴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도 관련 사실을 확인하고 뒤따라 보도했다. 금형 설비는 규모가 크진 않지만 부품생산에 있어서 필수적인 핵심 설비다. A사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주문량이 줄어든 데다 북측의 출입 통제로 발주업체들의 신뢰마저 잃자 개성공장의 생산량을 크게 줄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북한의 ‘은하 2호’ 발사로 정치적 리스크까지 커지면서 입주업체들이 생산설비를 옮길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A사 대표는 “동아일보 보도를 접한 아침부터 통일부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이런 반응에 입주업체 관계자들이 움츠러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관련해 다른 입주업체 대표는 “설비 이전 보도로 개성공단의 위기가 제대로 알려져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북측도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해 더는 자신들의 ‘캐시 카우(cash cow·자금줄)’를 망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개성공단은 중국의 선전(深(수,천))과 푸둥(浦東)경제특구에 맞서 세계적인 자유경제지대를 만들자는 야심 찬 포부로 남과 북이 힘을 합쳐 2002년 첫 삽을 떴다. 통일부의 처지에서는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개성공단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올해로 7년째를 맞는 개성공단이 성공하려면 통일부가 개성공단의 현 위기를 감추는 데에만 급급해선 안 된다는 것이 입주업체들의 목소리다. 문제점에 대해 흉금을 털어놓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개성공단의 미래도 있지 않을까.

김상운 산업부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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