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권희]“G20, 문제 생기면 연락해”

  • 입력 2009년 4월 6일 21시 14분


영국 런던에서 2일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대해 서방의 3개 신문이 매긴 국가별 평가가 제각각이다. 잘한 나라로 중국과 프랑스, 영국과 일본 또는 독일을 각각 꼽았다. G20 합의에 대해 “역사적 전환점”이란 긍정적 평가가 많지만 독일 등의 일부 언론은 “세계경제 몰락의 전환점”이라고 혹평했다. 평가가 크게 엇갈린 것은 G20 전반 또는 각 나라에 대한 기대가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은 영국의 한 신문 평가에서 중국 브라질 등과 함께 5점 만점에 2점의 낮은 점수를 받았다. 자유무역 확산을 위한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재개를 분명히 하지 못해 점수가 깎였다. 그렇지만 DDA가 아니라도 보호주의 저지, 경기부양 추진 등 한국이 주장했던 대목이 합의에 반영된 것을 보면 결코 작은 수확이 아니다.

G20은 한국 태국 등 아시아 외환위기 때문에 1999년에 시작됐다. 1970년 이후 세계경제 질서를 주무르던 선진 5개국(G5) 또는 G7만으로는 외환위기 대응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개발도상국까지 참여시킨 게 G20이다. 과거 외환위기 국가로서 G20의 수습 대상이었던 한국이 9년 뒤 선진국이 유발한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정상회의에서 위기 극복 경험을 들려주고 향후 처방을 제시했다. 학창시절 말썽꾸러기가 어엿한 교사가 돼 학생지도에 나선 격이다.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작년 11월 정상회의로 격상된 G20은 앞으로 G7을 대신해 역할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런던회의에서도 드러났듯 미국과 유럽의 패권 다툼에 중국 또는 아시아가 가세해 3파전이 돼 가는 양상이다. 마침 한국은 발언권이 강화돼 가는 아시아와 개도국의 대표로 어울리는 후보다. 유럽의 견제와 중국의 약진에 쫓기는 미국의 지지와 협조를 받아낼 수 있는 위치다. 여러 나라가 손을 내밀 수 있는 조정자, 중재자의 역할에 딱 맞는다. G20 국가들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뿌릴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국제회의에서의 발언권은 재정부담과 직결돼 있다. G20 합의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원을 5000억 달러 증액할 경우 우리 몫을 기꺼이 내야만 지분을 유지 또는 확대할 수 있다. 개도국 대표로 인정받으려면 때로는 개도국 전체를 위해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작년 11월 첫 번째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개도국들은 “링사이드에 자리를 얻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국제 핫이슈인 경제위기와 씨름하는 선수는 여전히 G7이며 개도국들은 참관만 한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오찬장에서 “우리(개도국)가 원하는 것은 당신들(선진국) 경제나 스스로 고치라는 것”이라고 선진국을 몰아붙였다. 미국 신문 만평에 나온 것처럼 두툼한 수표책을 보여주는 중국이 아니라도 개도국의 발언권이 확실히 커졌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그동안 G7, G8은커녕 G13, G14에도 못 끼었다. 작년에야 G20을 통해 경제질서를 논의하는 링사이드에 앉았다. 올해는 선수로서 의장국인 영국과 함께 진행을 맡았다. 내년엔 진행을 총괄하면서 회원국 이해를 조정하고 합의를 도출해내는 ‘핵심 주전’ 의장국이다. 올림픽 월드컵도 치러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도 해봤지만 국제회의에서 이만큼 중요한 역할을 맡기는 처음이다. 내년 G20 정상회의를 한국에 유치한다면 금상첨화다.

홍권희 논설위원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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