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카드사 직원의 이유있는 배반

  • 입력 2009년 4월 4일 02시 55분


“새 카드 받으면 바로 없애세요”

매출확대 추구하는 회사의 전략목표와

개인의 성과목표간에 불일치가 원인

발급량 대신 사용액으로 평가해야

오랜 외국 생활 후 2006년 귀국한 필자는 학교로 찾아온 은행 직원들이 카드나 펀드 가입을 사정하는 통에 매우 곤혹스러웠다. 지금은 이런 방문이나 전화에 익숙해져 처음부터 단호히 거절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안해서 직원의 말이 끝날 무렵에야 가진 카드가 이미 많아 어렵다고 거절했다.

이때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교수님, 신청만 하시고 카드 발급 후 바로 버리세요.” 필자는 이 말에 매우 놀랐다. 고객 한 명이 카드를 신청하면 은행은 신용 조회, 발급 결정, 발급, 카드 송부 등 상당한 추가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회사 전체로 보면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 어떻게 그 회사의 직원이라는 사람이 태연하게 카드를 받자마자 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직원은 한술 더 뜬다. “적당히 쓰시다 전화해서 더는 못 쓰겠다고 하세요. 그러면 카드 연회비도 면제입니다.”

은행원들의 이런 극단적 행동은 그 직원이 은행의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만 행동한다는 의미다. 은행에서 신규 카드 발급 실적을 기준으로 보너스를 지급하고 승진 점수를 책정하니 직원들은 당연히 신규 카드 발급 건수를 올리는 데만 집착한다. 일단 카드 발급이 이뤄지면 고객이 카드를 버리건 말건 그 직원의 평가와 보수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직원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합리적 개인은 당연히 애사심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고려한다. 금전적 동기는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이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을 회사의 이익 극대화로 연결하지 못한 회사가 문제다. 즉 회사가 적절한 성과 평가 및 인센티브 제도를 설계했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신규 카드 발급 건수가 아니라 카드 발급 후 특정 기간 사용된 카드만 성과에 반영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카드를 받자마자 버리라’고 말할 직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카드 발급 후 고객이 사용한 금액을 평가 기준으로 삼으면 어떨까. 은행원은 당연히 카드 발급 건수보다 어떤 고객에게 카드를 발급하느냐를 더욱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100명의 고객보다 큰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한 명의 주요 고객을 확보하려 노력할 것이다. 해당 고객이 직원에게 계속적으로 수익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크고, 우수 고객을 확보한 직원은 계속 보너스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해당 직원의 이직률이 낮아질 것이므로 은행은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더 나아가 카드 발급 후 바로 해지되는 카드의 개수를 집계해 이를 평가 점수 차감 요인으로 반영해보자. 회사에 해를 끼치는 은행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단번에 사라질 것이다. 카드 발급을 권유하는 직원이 임시직이나 계약직이라도 상관없다. 고용 계약이 끝나도 실적에 따라 계속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면 계약직 사원도 우량 고객을 발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 최종학 교수는

서울대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에서 회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 강의상과 우수 연구상을 동시에 받는 등 활발한 연구 강의 및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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