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쇼핑 호르몬’도 男女有別

  • 입력 2009년 4월 4일 02시 55분


男 매장에서 길은 안잃어도, 특정물건 잘 못찾아

女 특정 물건 잘 찾지만 매장에서 길 잃는 경우도

#1 독일 님펜부르크대 연구팀이 쇼핑을 하는 남녀의 시선 차를 연구한 적이 있다. 조사에는 고객의 눈길을 10분의 1초 단위로 측정할 수 있는 아이트래킹(eyetracking) 장비가 쓰였다. 그 결과 남성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진열대를 대강 훑어보는 반면,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꼼꼼하고 세부적으로 상품을 살펴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 여성은 쇼핑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청바지를 살 때는 백화점의 관련 매장을 다 돌아보고, 한 매장 안에서도 모든 종류의 청바지를 다 훑어본다. 한참을 둘러본 후에도 친구와 근처 분식집에서 상의를 한다. 남성은 이런 복잡한 과정을 과감히 생략한다. 그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남성복 코너로 곧바로 올라간다. 그리고 평소 자주 들르는 브랜드 매장에 가서 “32∼36사이즈 주세요”라고 말하고는 대개 입어보지도 않고 옷을 사버린다.

○ 여성의 뇌가 더 통합적으로 기능

첫 번째 사례는 왜 여성들이 백화점에서 ‘괜찮은 물건’을 놓치지 않는지를 설명한다. 여성들은 결코 남성들처럼 눈앞의 물건도 찾지 못해 헤매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성들에게도 단점이 있다. 이들은 ‘나무’를 살피느라 ‘숲’을 보지 못해 때때로 백화점에서 화장실에 갔다가도 길을 잃는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차이의 원인에 대해 “남녀의 뇌가 다르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남자와 여자의 뇌는 우선 크기부터 다르다. 여성의 뇌는 1.2kg으로 남성의 것(1.4kg)보다 200g 정도 더 가볍고 작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지능이 절대 남성보다 떨어지지는 않는다.

뇌 조직의 구조도 다르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뇌는 여성의 그것보다 백질(white matter)이 더 두껍다. 백질은 신경세포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신경 트랙으로 이뤄져 있다. 이는 남성 뇌가 정보 전달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두껍다. 덕분에 남성은 양쪽 뇌의 기능이 특화되고 세분돼 있다. 반면 여성은 상대적으로 양쪽 뇌가 통합적으로 기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구매 행동이 다를 수밖에 없다.

○ ‘사냥 호르몬’ 때문에 매장 직행

남녀의 구매활동 차이는 뇌의 구조와 기능 이외의 요인으로부터도 영향을 받는다. 제3의 요인은 바로 호르몬이다. 두 번째 사례는 호르몬이 구매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남녀의 몸에서는 서로 다른 호르몬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여성은 에스트로겐, 남성은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는다.

에스트로겐은 여성호르몬의 일종으로 (남성의 몸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심하고 감성적이며 인간관계에 민감한 여성적 특징을 유발한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성을 만들어 낸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대체로 좀 더 공격적이고, 심지어는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것은 테스토스테론의 과도한 영향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원시시대 때의 사냥 습성 등과 관련된 호르몬이다. 남성이 쇼핑을 할 때 사냥에서처럼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돌진하게 만든다. 청바지를 사려는 남성이 청바지 매장으로 직행하는 것이 그 효과다. 여성은 에스트로겐의 영향으로 세심하게 쇼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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