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한]첨단의료시스템 가로막는 ‘진료과별 이기주의’

  • 입력 2009년 3월 27일 02시 58분


6년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의료진을 호출할 땐 흔히 ‘삐삐’를 사용했다. 잠깐 의사 생활을 했던 기자도 삐삐 호출이 뜨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번호를 확인했다. 특히 병동 번호 뒤에 82, 8282라는 숫자가 뜨면 긴급 호출이었기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1990년대 초까지는 무거운 무전기를 썼다.

요즘 대부분의 병원은 의료진을 호출할 때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필요할 때 바로 연결해서 통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등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인터넷이 가능한 개인휴대정보기(PDA)를 활용하고 있다. 의사는 PDA에 접속해 환자 정보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정보기술은 빠른 진단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 2007년부터는 휴대전화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문자메시지 기능이 뇌중풍(뇌졸중) 환자 응급진료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경기 평촌 한림대 성심병원의 경우 환자 진단에 걸리는 시간이 45분에서 15분으로 단축됐다.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병원은 컴퓨터로 처방하는 전자처방전달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데 여기에 별도의 소프트웨어만 깔면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본보 3월 26일자 A12면 참조 “자동 SMS가 응급실의 기적 만들죠”

그러나 문자메시지 호출 시스템은 아직도 일부 대학병원에서만 활용되고 있다. 각 과 의료진 간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응급환자 치료를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환자 케어 플랜이 있어야 하고, 진단 치료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각 과 의료진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뇌중풍 응급조치에는 영상의학과 응급의학과 신경과 신경외과 진단검사의학과 의료진의 긴밀한 협진체제 구축이 필수적이다. 실시간으로 통보되는 문자메시지에 각 과 의료진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진료시간을 줄이기 힘들다.

요즘 대학병원들이 각종 첨단 의료서비스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각 과 간의 협력은 취약한 편이다. 협력은 고사하고 갑상샘암 치료에 외과와 이비인후과가, 심장질환 치료에 흉부외과와 심장내과가, 턱관절 질환 치료에 치과와 성형외과가, 척추수술에 정형외과와 신경외과가 다툼을 벌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두 각 과의 뿌리 깊은 이기주의 때문이다. 이기주의를 넘느냐 마느냐는 병원장의 리더십과 마인드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한림대 성심병원의 성공이 그걸 보여준다. 결국 사람이다. 첨단 의료서비스도 사람의 벽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이진한 의사·교육생활부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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