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선수들 앞에만 서면 웃는 감독들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8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값진 준우승을 이끈 김인식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은 유니폼을 입을 때마다 애를 먹는다. 2004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오른쪽 팔과 다리에 마비 증세가 남아 있어 옷 한번 입으려면 20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그래도 누구에게 도움 받는 일 없이 옷 입기 전에 감독실 문부터 잠근다. WBC 경기에 앞서 선수단 소개 때는 그라운드까지 나오지 않고 더그아웃 앞에서 인사를 했다. 거동이 불편한 모습이 자칫 우리 선수들이나 상대 팀의 사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김 감독처럼 스포츠 지도자는 어딘가 불편해도 마음 편히 내색할 수 없는 고독한 존재다. 피 말리는 순위 경쟁 속에서 지난 주말 정규시즌을 마치고 이번 주말 플레이오프에 들어가는 프로농구에서도 그랬다.

동부 전창진 감독은 줄곧 선두를 달리다 시즌 막판 모비스에 추월당하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동틀 무렵에야 겨우 눈을 붙이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선수들을 격려했고 코치들과 당구를 치며 기분전환을 이끌었다.

‘초보 사령탑’ KT&G 이상범 감독 역시 부상 선수가 쏟아져 애를 태우면서도 선수들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이 감독은 “감독이 흔들리면 선수들은 더 동요하기 마련이다. 평소보다 더 웃고 살갑게 대했다”고 말했다.

명지대에서 프로에 처음 뛰어든 LG 강을준 감독은 “선배 프로 감독님들 정말 대단하다. 수명이 몇 년은 단축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 방문경기를 갔다 숙소에서 기절한 적도 있는 강 감독은 기복이 심한 외국인 선수들에게 “너희들 피부색은 나보다 훨씬 까맣지만 내 속은 그것보다 더 새까맣다”고 하소연하며 목욕탕에 데리고 가 마사지를 해주기도 했다.

최희암 전자랜드 감독은 “역전패라도 한 날은 밥알이 모래알 같지만 선수들의 눈을 의식해 억지로 더 먹는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 책에 의지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다. 그게 바로 감독의 숙명인가 보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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