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덕환]과학연극, 왜 필요할까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8분


본격적인 과학연극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미 우리에게 소개된 ‘산소’(칼 제라시, 로알드 호프만 작)와 ‘코펜하겐’(마이클 프레인 작)을 비롯해 일본의 ‘과학하는 마음’(히라타 오리자 작)과 국내 창작극 ‘하얀 앵두’(배삼식 작)가 한꺼번에 국내 무대에 오른다고 한다. 과학창의재단에서도 과학연극의 공연과 창작을 적극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과학적 개념과 과학자의 독특한 삶을 소개하는 연극이 있다. 과학수업에서 활용하기도 하는데 과학에 대한 청소년의 흥미를 자극하는 일이 주된 목적이다. 그런 연극도 ‘과학연극’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연극이 과학을 설명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과학자의 삶이 연극의 소재가 될 만큼 극적인 경우도 드물다. 이성적 논리와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학과 감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극의 만남이 낯설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과학을 연극처럼 만들 수 없고, 반대로 연극을 과학처럼 만들 수 없다. 과학에서는 반전(反轉)과 같은 극적 효과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주관적인 해석도 허용되지 않는다. 과학적 요소가 연극의 예술성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

‘산소’의 작가인 화학자 제라시는 과학연극을 통해 과학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결정하고 발견하는지를 소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객이 과학자의 독특한 행동양식과 발견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아가 과학은 단순한 흑백논리로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도 강조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과학연극을 통해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싶다는 뜻이다.

진정한 과학연극은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우선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관을 예술적 감각으로 승화시켜 표현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과 우리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는 세계관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진화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새로운 과학지식을 근거로 하는 현대의 세계관은 폐쇄적이고 차별적이고 암울했던 과거의 세계관과는 전혀 다르다. 관객이 그런 세계관의 실체와 변화를 공감하도록 해주는 일이 예술의 가장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사회적 역할이다. 무작정 과거와 자연을 찬양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과학연극의 역할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예술의 한 분야로서의 연극은 현대사회의 위험 요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치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향유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대사회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는 여전히 남아있다. 오히려 과거보다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인식도 있다. 결국 과학연극은 현대사회의 핵심인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평가하고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과학이 보편성과 객관성을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이해되고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만 문화적 전통을 합리화하고 지평을 확장할 수 있다. 과학연극은 과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문화 창달과 사회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과학연극이 과학의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합리성의 본질이 근원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학연극이 과학의 발전에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학연극을 통해 과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일이 과학 발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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