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인물 중에 대머리가 없는 이유와 100조 달러짜리 지폐

  • 입력 2009년 3월 19일 11시 25분


1962년 5월 16일 발행한‘모자상(母子像) 지폐’(다음카페‘화폐수집-여행과 자유’ ID : 20000volt님 소유)
1962년 5월 16일 발행한‘모자상(母子像) 지폐’(다음카페‘화폐수집-여행과 자유’ ID : 20000volt님 소유)
유로화 통합 이전 유럽 각국의 여성도안 지폐(다음카페‘화폐수집-여행과 자유’ ID : 은하철도 님 제공)
유로화 통합 이전 유럽 각국의 여성도안 지폐(다음카페‘화폐수집-여행과 자유’ ID : 은하철도 님 제공)
엘리자베스 2세가 그려진 영연방 지폐(다음카페‘화폐수집-여행과 자유’ ID : 은하철도 님 제공)
엘리자베스 2세가 그려진 영연방 지폐(다음카페‘화폐수집-여행과 자유’ ID : 은하철도 님 제공)
여성독립영웅 도안 지폐(다음카페‘화폐수집-여행과 자유’ ID : 은하철도 님 제공)
여성독립영웅 도안 지폐(다음카페‘화폐수집-여행과 자유’ ID : 은하철도 님 제공)
짐바브웨의 100조 달러 지폐
짐바브웨의 100조 달러 지폐
세계 지폐여행 ‘여성도안 속으로’

수염이 없는 여성은 도안으로 부적격?

신사임당이 5만 원권 지폐의 도안으로 결정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지폐는 남성 도안 일색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위주의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 여성인물의 부족? 물론 다 맞는 말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시중에 통용되는 지폐도안 인물을 천천히 살펴보자. 퇴계이황, 율곡이이, 세종대왕.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수염에 있다.

위폐감별로 ‘대한민국 신지식인 2호’로 선정되기도 했던 배원준 소장(세계화폐연구소)은 수염이 많은 인물을 도안으로 사용하는 이유로 위조방지 효과를 들었다. “세계적으로 봐도 화폐 도안인물에 대머리인 사람은 드뭅니다. 도안이 복잡할수록 위조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수염이 많은 인물이 위조방지에 더 적합합니다. 여성도안이 지금까지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될 겁니다.”

5만 원권의 신사임당 도안 이전에도 여성도안지폐는 있었다. 1962년 5월 16일 발행한‘모자상(母子像) 지폐’가 그것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통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이 지폐는 아쉽게도 제3차 화폐개혁으로 24일간의 유통에 그쳐 최 단기 유통 화폐로 기록되고 말았지만 그 희소성 때문에 화폐 수집가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폐중 하나가 되었다. 상태가 양호한 경우에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모자상 외에도 우리나라의 여성도안 화폐는 1975년 광복 30주년 기념 100원화의 ‘태극기를 든 여인’이 있었다. 그러나 유관순 열사를 형상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고 시중에서 통용되지 않았다.

수염이 없기 때문일까? 신사임당 지폐에는 지금까지 나온 지폐들을 뛰어넘는 최첨단 위조방지 기술이 집약되어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띠 형 홀로그램을 비롯해 상단의 고유번호는 가로 방향으로 갈수록 더 커진다. 색변환 잉크를 사용한 뒷면 액면숫자는 기울기에 따라서 자홍색에서 녹색으로 변한다. 전문취급자들을 위해 형광잉크를 사용해 X선을 비추면 형광색상이 드러나는 장치도 있다. 이쯤 되면 지난날 지폐 속 인물의 수염들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일본은 2004년부터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桶口 一葉)를 여성 최초로 5000엔 권의 도안으로 사용하고 있다. 북한의 1원권 지폐에는 인민배우 홍영희가 등장한다. 우리나라는 오는 6월 신사임당의 5만 원권으로 여성도안 지폐의 첫 발을 내딛는다.

그렇다면 세계 여러 나라들은 얼마나 많은 여성을 지폐도안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미국은 지금까지 지폐에 여성도안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아시아에서도 드물다. 아프리카는 독립영웅이나 불특정 다수 원주민들이 도안으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동·식물이나 자연을 소재로 한다.

여성도안에 있어서는 유럽문화권 국가들이 더 앞서나가 있다. 도안 역시 화려하며 문학·예술가나 사회운동가, 종교인 등 특정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둔 인물이 많다. 유로화 통합 이전 유럽은 여성도안을 가장 많이 사용했던 지역이다.

세계의 여성도안지폐

예술에 종사했던 인물이 주류를 이루는 유럽

유럽의 여성 지폐도안은 가수, 소설가, 시인, 배우 등 주로 예술에 종사했던 인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노르웨이는 소프라노 가수 키르스텐 플라크스타(Kirsten Flagstad)와 소설가 시그리드 운세트(Sigrid Undset)가 각각 100크로네와 500크로네에 등장했다.

덴마크는 카렌 블릭슨(Karen Blixen, 작가), 요하네 루이스 하이베르크(Johanne Luise Heiberg, 배우), 안나 앵커(Anna Ancher, 화가)가 각각 50, 200, 1000 크로네에 등장했다.

문화와 예술의 나라답게 4명의 문화·예술 여성인물이 지폐 도안을 장식한 독일은 5마르크의 베티나 아르님(Bettina von Arnim, 작가), 20마르크의 안네테 드로스테 휠스호프(Annette Droste Hulshoff, 시인), 100마르크의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피아니스트·작곡가)이 도안에 등장한다. 또 500마르크에는 생태학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Maria Sibylla Merian)이 그려져 있다.

두 나라의 지폐 도안으로 사용된 인물도 있다. 폴란드 태생 프랑스 과학자 마리 퀴리(Marie Curie)는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각각 사용되기도 했다.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에서는 여가수들이 화폐도안인물로 다수 등장한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극찬했던 스웨덴 50크로나의 제니 린드(Jenny Lind)는 19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가수였다.

영연방의 엘리자베스 여왕, 호주의 양성평등 원칙

세계에서 가장 많이 화폐 도안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다. 영국, 지브롤터, 건지, 맨섬제도, 저지, 벨리즈, 케이먼제도, 안길라, 안티구아, 도미니카, 그레나다, 몬세라트, 세인트 키츠, 세인트 루시아, 세인트 빈센트, 세인트 헬레나, 포클랜드 등 20개국 이상의 영연방에서 도안으로 등장한다.

영국은 1960년대부터 모든 파운드화 앞면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도안이 바뀌는 경우에도 앞면의 여왕초상 소재는 변하지 않고 뒷면의 소재만 변경된다. 지금까지 발행한 파운드화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시대별 변천사를 엿볼 수 있을 정도.

시리아도 여왕을 지폐도안 소재로 사용했다. 현재 통용되는 5권종중 1종인 500파운드에는 칭기즈 칸과 견줄 만한 고대도시 팔미라의 강인한 사막의 여왕이었던 제노비아(Zenobia) 여왕이 그려져 있다.

호주는 지폐 도안에 남녀평등의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나라다. 지폐 앞뒤로 남녀가 한 명씩 등장한다. 10달러의 메리 길모어(Mary Gilmore, 시인), 20달러의 메리 라이비(Mary Reibey, 탐험가·사업가), 50달러의 에디스 코완(Edith Cowan, 정치가·여성운동가), 100달러의 넬리 멜바(Nellie Melba, 소프라노 가수) 등이 도안으로 등장한다. 또 호주는 특이하게 1990년대부터 폴리머(Porymer)라는 플라스틱 재질로 된 지폐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여성 독립영웅

한때 우리나라도 유관순 열사를 5만 원권 도안으로 추진하던 때가 있었을 정도로 애국심은 지폐 도안의 주요 소재다. 과거 열강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여성 독립 영웅들이 다수 지폐의 도안으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베네수엘라의 20볼리바르에 등장하는 루이사 카세레스 아리스멘디(Luisa Caceres de Arismendi)는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베네수엘라의 독립영웅이다. 콜롬비아 독립을 위한 혁명군의 스파이로 활동하다가 20대 중반에 스페인군에 체포되어 처형된 폴리카르파 살라바리에타(Policarpa Salavarrieta)는 콜롬비아 10,000페소에 등장한다.

아프리카의 아이티의 10구르드에는 1802년 독립전쟁에 남편과 같이 전투를 하다 체포되어 처형당한 사니트 벨레르(Sanite Belair)가 도안되어 있으며 자메이카의 500달러에는 군사 지도자로 사후 자메이카의 영웅 칭호를 받았던 마룬 족의 낸니(Nanny of the Maroons)가 그려져 있다.

체코의 2,000코룬에 등장하는 에마 데스티노바(Ema Destinova) 역시 독립영웅이다. 그녀는 베를린의 오페라 가수로 명성을 얻었지만 1차 대전에서 체코 저항군을 지원하여 고초를 겪기도 했다.


▲동아닷컴 이철 기자

취미중의 황제 화폐수집

‘100조 달러’ 들어보셨나요?

외국 지폐 도안은 화폐수집가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도안이 아름답고 섬세하며 우리나라와는 달리 다양한 색채로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수집가들에게는 이미 단순한 지불의 수단을 넘어선 예술작품이다.

이 많은 화폐들을 수집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음카페 ‘화폐수집-여행과 자유’(화여자) 회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모임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화폐들이 함께 한다. 이들의 모임을 찾아갔을 때에도 심상치 않은 아프리카 한 나라의 지폐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0의 개수가 심상치 않은 한 장의 지폐. 액면가 100조 짐바브웨 달러였다.

“짐바브웨에서는 인플레이션이 하도 심해서 액면가의 단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0이 세 개만 더 붙으면 컴퓨터도 인식 못하는 숫자의 지폐가 탄생 하는 거죠.”모임에 참석한 장경순씨(다음카페 화여자 ID : 타이거 장)의 말이다. 여느 나라에서 100조는 꿈의 숫자지만 짐바브웨에서 100조로 살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우리나라 돈으로 만 오천 원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화폐수집동호회인 이들은 한 달에 한 두 번씩 모임을 열어 수집한 화폐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회원 간 친목의 시간을 갖는다. 짐바브웨 100조 달러 지폐도 한 회원이 여행에 돌아오며 가져온 것을 회원들끼리 나누는 중(그들은 ‘분양한다’는 표현을 쓴다)이라고 했다. ‘짐바브웨에서는 10분마다 환율이 바뀌기 때문에 식당에 들어올 때 음식 가격과 나갈 때의 가격이 다르다’는 풍문도 함께 나눴다.

지폐 도안에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폐도안은 그 나라의 특징을 가장 잘 살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건물이나 동물들을 활용하기도 하고 관광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은 유적지를 도안에 넣는다. 그래서‘화여자’회원들은 도안을 테마별로 모으기도 한다. 이들이 가진 세계 화폐에 대한 지식과 수집품들은 전문가 수준이다.

운영자 송경섭씨(다음카페 화여자 ID : 송선장)는“지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 생활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흔히 ‘화폐는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화폐를 수집하면서 얻는 기쁨은 다른 것에 비할 바 못된다고 생각해요. 감히 취미중의 황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취미중의 황제이므로 비용도 황제 급이겠다’는 질문에 그는 “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라고 답했다. 대신 열정은 황제 급이다. 한 회원은 천 원짜리 구권 화폐의 ‘솔리드(일련번호가 모두 같은 화폐)’번호와 ‘레이더(영어 RADAR처럼 반대로 뒤집어도 일련번호가 같아지는 화폐)’번호를 가진 지폐를 찾기 위해 수백만원어치를 환전해 등산용 가방에 담아왔을 정도. 그러나 밤새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다른 누군가가‘한번 쓸고 지나간’뭉치였다는 것.

화폐 수집을 통해 세계를 여행한다는 그들답게 이름 역시 ‘화폐수집-여행과 자유’(화여자)다. 운영자 송경섭씨(다음카페 화여자 ID : 송선장)는 “인생과 여행 그리고 화폐수집 모두가 자유로움 속에서 사진이 행복함을 느낄 때 비로소 멋진 모습으로 승화된다”며 “카페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화폐수집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작은 꿈”이라고 말했다.

이철 동아닷컴 기자 kino2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