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용관]일선 과장급 인사에도 보이지 않는 TK의…

  • 입력 2009년 3월 14일 02시 58분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최근 사석에서 “정부 고위직이나 정무직 인사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주저 없이 “출신 지역”이라고 답했다. 나름대로 ‘지역 안배’를 가장 신경 쓴다는 얘기였다.

실제 인사 시즌에 출신지역에 따라 울고 웃는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누구는 지역을 잘 타고 나서 승진 혹은 발탁이 됐고 누구는 역차별을 받았다는 식이다.

특정 인사의 출신지역이 어딘지를 놓고 난데없는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우스운 광경을 접할 때도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태어난 곳과 자란 곳,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 다르다. 영남 정권 시절에는 ‘영남인’ 행세를 하고 호남 정권 시절에는 ‘호남인’ 행세를 하는 철새 같은 사람도 있다.

인사를 하는 쪽이나 인사의 대상이나 출신 지역은 민감한 문제다. 청와대는 인사를 할 때 지역안배를 고려한다고 하지만 근래에 이뤄진 인사를 보면 그런 원칙이 무뎌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얼마 전에 단행된 인사만 봐도 경찰청장, 치안비서관이 모두 대구 경북(TK) 출신이다. 청와대 춘추관장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사실상 인사권을 갖고 있는 한 언론사 사장 역시 TK 출신이 선임됐다. 이 과정에서 정권 실세인 누구누구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했다는 얘기도 파다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실상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전국적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특히 수도권에서의 일방적인 지지는 전례가 없던 것이었다. 이념 문제에 매몰됐던 10년을 청산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데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것이다. 그는 특정 지역에 빚을 진 게 없다.

그런데도 슬금슬금 이 대통령의 동향 사람들이 각종 인사에서 중용되는 것은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탕평책을 펴기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을 저버리는 것이다.

청와대가 ‘TK의 덫’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 아니냐는 한탄이 친이(친이명박)계 핵심들 사이에서도 나오는 실정이다.

“요즘 정부 부처의 국장 과장급 인사까지도 TK의 파워가 작동하고 있다. 고위직은 물론이고 일선 부처의 과장급 인사까지 챙기는 게 말이 되느냐. 일만 잘하면 되지 왜 지역을 따지느냐.”

13일 만난 한 중간 간부는 자신도 TK 출신이지만 이래선 안 된다고 한탄했다.

정용관 정치부 yonga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