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입학사정관제 후유증 걱정케 하는 우리 현실

  • 입력 2009년 3월 13일 02시 57분


서남표 KAIST 총장이 일반고 학생을 대상으로 면접으로만 150명을 뽑겠다고 발표한 이후 각 대학이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하는 입시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고려대가 올해(2010학년도) 입시에서 정원의 23.5%를, 연세대는 16.3%를 입학사정관을 통해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포스텍은 아예 신입생 300명 전원을 입학사정관을 통해 뽑기로 했고 성균관대 한양대 한국외국어대도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 대학들이 시행하는 입학사정관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내신 성적 외에 학생의 인성 창의력 잠재력 소질을 평가해 선발하는 방식이다. 입학사정관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면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한국 교육의 고질병인 사교육 의존도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졸속으로 추진하면 좋은 취지는 못 살리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혼란을 낳을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1920년대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미국은 입학사정관을 양성하기 위해 투자도 많이 하고 관련 노하우도 엄청나게 쌓았다. 특별활동, 봉사활동, 자기소개서, 에세이, 인터뷰 등의 평가에는 80년이 넘는 경험이 녹아있다. 사회적으로도 학교의 선발기준과 선택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요컨대 대학과 사회의 관계에 신뢰가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 대학들이 고교에 학생 추천권한을 준다고 해도 학교장이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시스템을 통해 학생을 선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부모들이 숫자로 나타나는 점수가 아닌 다른 평가 결과에 승복할지도 모르겠다.

대학이 자발적으로 입학사정관제를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당근’ 정책에 끌려 급조하고 있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입학사정관 제도를 도입하는 대학에 총 236억 원의 예산지원을 발표하자 대학들이 충분한 준비도 없이 뛰어들고 있다. 대학들이 예산을 따낼 목적으로 무늬만의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할 우려도 있다.

입시정책은 3년 전에 예고하는 것이 보통인데 당장 올해부터 시행하겠다는 대학이 많아 일선 고교와 학부모들도 당황하고 있다. 서울대가 입학사정관을 올해 118명에서 내년엔 소폭인 22명만 늘려 140명을 뽑는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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