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범모]영어인력 위한 ‘국비 훈련원’ 어떨까

  • 입력 2009년 3월 6일 02시 59분


지금 영어교육이 지나친 과열에 휩쓸려 있다. 거대한 경제적 정신적 낭비라는 생각에서 몇 가지 제언한다.

첫째, 초등학교의 정규 영어교육은 별 효과 없다. 정 하려면 과외 선택과목으로 하고 그 시간은 국어 독서와 작문에 배당함이 더 교육적이다. 둘째, 시급한 점은 중고교 영어교육의 획기적인 개선이다. 셋째, 대학에서 전공과목의 10∼20%를 영어로 강의하는 모습도 대학 본래의 궤도에 어긋난다. 전공학과는 전공을 공부하는 곳이지 영어를 배우는 곳이 아니다. 영어교육은 따로 강화해야 한다. 넷째, 국제관계에서 활약할 요원은 국립으로라도 ‘외국어훈련원’을 전국 몇 곳에 설립해 기숙사형으로, 장단기 강력하고 집중적인 교육으로 길러내야 한다.

이 제안엔 상식적으로도 짐작이 가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외국어는 배우고 나서도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으면 곧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더구나 능숙도가 일정 수준 이상에 이르지 않으면 급전직하로 망각해버린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배우고 나서도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중 어느 하나 가늘게라도 일상생활에서 계속하지 않으면 망각의 비탈길은 더 가팔라진다.

한국의 일상용어 또는 공식용어는 영어가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 밖에 나가면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고 어설프게 배운 영어는 곧 잊어버리는 생활환경이다. 외국어는 어려서 배우는 편이 효과적이란 것은 맞는 말이다. 단, 거기엔 외국어를 일상생활에서 가늘게라도 계속 쓴다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

한 언어학자의 말대로 모든 언어엔 기본적인 공통 요인이 있다. 능숙한 국어능력이 외국어 학습과도 연결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초등학교는 국어능력 발달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다. 어떤 대학에서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 대학 당국의 방침에 따라 전공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던 한국인 교수가 하루는 “이거, 속 터져서 못해 먹겠다”라고 해 학생들도 폭소를 터뜨렸다. 아무리 유학 가서 다진 영어도 한국인 교수에게서 강의를 듣는 학생으로서는 다소 답답할 수밖에 없고 자연 수업효과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아무리 세계화시대라 해도 우리나라에서 직무상 유창한 영어가 필요한 사람은 많아야 인구의 10∼20%밖에 안 될 것이다. 대부분은 영어 없이도 또는 기본적 일상 표현에만 익숙하면 된다. 그 정도는 나이 먹어도 배울 수 있다. 그들에게 초등학교부터 정과로 과외로 영어학습을 강요하는 정책은 돈과 시간의 낭비다.

단, 필요한 사람은 어디에서든 강력하고 집중적이고 생활화된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반년만 미국에 가서 영어로 생활한다면 물론 완전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의사소통은 할 수 있다. 그와 비슷한 학습경험을 제공하는 ‘외국어훈련원’을 국비로라도 몇 개 세울 만하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를 장기 또는 단기간에 배울 수 있는 기관을 말한다. 중고교와 대학도 비슷한 집중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어 영국과 미국 등을 제외한 모든 세계인의 피할 수 없는 멍에가 되어 버렸다. 멍에를 가능한 한 단시일에 효과적으로 벗기 위해서, 지금의 영어교육이 그러기엔 역부족이고 망각을 위한 거대한 낭비임이 안타까워 영어전공이 아닌 자가 마지못해 하는 고언이다.

정범모 한림대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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