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민동용]‘거수기 의원’ 헌법 46조 2항 위반입니다

  • 입력 2009년 3월 5일 02시 58분


투표하라 말라 상명하복

‘양심에 따른 직무’는 말뿐

3일 국회 본회의는 국회의원이 때로 ‘거수기’라는 조소를 듣는 이유를 다시 한 번 분명히 보여줬다.

이날 오후 9시부터 밤 12시까지 안건 60개를 처리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목표는 오로지 ‘조속한 처리’였다.

법안 심사보고와 제안 설명을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한나라당 의원들은 평소보다 두 배 정도 빠르게 법안 제목을 읽었다. 그리고 한결같이 “법률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단말기 회의 자료를 참고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잘했어”를 연발했다. 야당 의원이 찬반 토론을 하러 나오자 일부 의원은 “토론 길게 하면 반대표 찍을 거야”라고 농담하며 희희낙락했다.

이들은 별 고민 없이 의석에 붙은 컴퓨터 단말기의 찬성 버튼을 계속 눌러댔다. 서너 명의 의원만이 겸연쩍은 듯 간간이 반대나 기권 표를 던졌다.

민주당 의원들 역시 야전지휘관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보병 같았다. ‘투표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투표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았다.

이날 처리를 미룬 은행법이 혹시 직권상정 될까 봐 출석은 하되 투표는 거부한다는 원칙을 세운 민주당은 아예 본회의장에 들어서는 의원들에게 “재석(在席) 버튼을 누르지 말라”고 지시했다. 재석 버튼을 누르면 투표자 수에 포함돼 ‘기권’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섯 번째 안건인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상정되자 정세균 대표 등 지도부는 황급히 “이건 투표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의석을 떠났던 의원들도 부랴부랴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 법안은 제주도 출신 강창일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데다, 제주도의 3개 의석 전부가 민주당 차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뿐이었다.

이후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들에도,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합쳐져 상정된 대안(代案) 9건에도 투표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만든 법안도 나 몰라라 한 셈이다.

참다못한 박상천 의원은 정 대표에게 “출석은 해놓고 왜 투표하지 말라는 거냐”고 따지다 이내 포기한 듯 본회의장을 떠났다.

여야 의원들은 “당론을 거스르기 어려웠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헌법 제46조 2항을 알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민동용 기자 정치부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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