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금융위기 한방에 휘청대는 아일랜드

  • 입력 2009년 3월 4일 02시 54분


글로벌 금융공황으로 흔들리는 나라 중에서 아일랜드는 충격적이다. ‘경제모델 신화’로 세계가 부러워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아일랜드가 어떤 나라인가. ‘유럽의 거지’에서 20여 년 만에 유럽 2위 부국이 된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이 1988년 1만 달러를 돌파하고 2007년 6만 달러까지 육박했다. 아일랜드인들은 역사상 그런 ‘배부름’을 누린 게 처음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유럽 1순위로 경기침체에 진입했다. 유럽 정부로는 처음 “정부가 은행예금을 전액 지급보증한다”고 지난해 10월 선언했지만 부실채권 증가와 자금이탈은 멈추지 않고 있다. 100만 명이 이민을 간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이 나라에 다시 조국을 등지는 ‘아일랜드 엑소더스(Irish Exodus)’가 재연된다는 소식이다. 지난달 21일 수도 더블린 한복판에서는 교사 경찰관 소방관 등 현직 공무원들이 가세한 가운데 시민 12만 명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더블린 인구가 100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도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일랜드 몰락 원인은 제조업 생산의 50%, 고용의 40%를 차지하던 외국인 투자가 썰물처럼 빠진 탓이 크지만 내부 요인도 크다. 잘나갈 때 흥청망청했던 것이다. 수직상승하는 호황의 물살을 타고 임금 집값 생활비 모든 게 치솟았다.

‘영어를 구사하는 값싼 인건비’가 최대 매력이던 이 나라 제조업 근로자 평균임금은 시간당 26달러로 미국(24달러)보다 높다. 더블린 생활비는 파리 뉴욕과 비슷하고 사무실 임차료는 런던 도쿄 파리에 이어 세계 4번째다.

다국적 기업들은 미국발 금융위기 전부터 두 손을 들고 있었다. 모토로라는 2007년 5월 먼스터 주 코크 공장 문을 닫고 직원 330명을 해고했다. 2003년까지 유입이 유출보다 많았던 외국인 직접투자는 2004년부터 유출이 더 많은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주택건설 부문 생산이 한때 3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부동산 침체도 미국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 1년 전부터 붕괴조짐을 보였다. 인구 430만 명의 작은 나라가 지난해에만 집 10만 채를 지었다. 아일랜드 인구의 12배가 넘는 영국이 지난해 건설한 신규주택이 18만 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지어댔는지 짐작이 간다. 부동산 거품 붕괴로 성인 8명 중 1명꼴이던 건설노동자 수만 명이 거리로 나앉았다.

금융위기 한방에 흔들리는 아일랜드를 두고 신자유주의의 위기라느니, 개방이 옳은 것은 아니라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잘못 짚었다. 개방의 본질은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 아일랜드처럼 작은 나라들에는 개방이 때로 숨통을 끊어놓을 정도로 ‘무서운 것’임은 알아야 한다.

아일랜드 교훈은 ‘잘나갈 때 흥청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외풍을 견디려면 자기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 기업과 기술이다.

경제대전(經濟大戰)에서 한국이 이 정도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우리 기업, 우리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을 일구고 기술을 개발한 부모와 선배 세대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새삼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허문명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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