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현우]98%가 부족한 국회

  • 입력 2009년 2월 21일 03시 21분


2월 임시국회가 대정부질문을 끝내고 상임위활동으로 넘어갔지만 탐탁하지 못한 것은 이전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국민 대다수의 무관심 속에서 대정부질문은 행정부를 나무라거나 의원들의 지역구 이익 챙기기에 빠져 시간만 허송하는 느낌이다. 지난해 12월 법안처리를 놓고 무력 충돌한 이후 국회는 무기력과 적대감을 대변하는 의원들의 집합체가 되어 버렸다.

안정된 수준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국가들 중에서 국회기능이 부진한 경우와 그 원인을 찾아보았다. 한국의 국회현실을 설명해줄 사례나 이론적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현재 국회가 운영되는 모습을 보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본회의 차원의 대정부질문을 폐지하고 상임위 차원에서 대정부질문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또한 의원입법의 질을 높이기 위해 행정입법처럼 입법예고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름대로 타당하게 들린다.

그러나 국회는 제도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제도가 미비해서 국회가 이 지경이 된 것도 아니다. 근본적 문제는 국회를 대치할 기관이 없다는 독점성에 있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유독 한국 국회만 이처럼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불신이라는 정치문화가 공동체 이익추구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동업자들이다. 경쟁적 동반관계이므로 상대 정당을 인정하지 않으면 동시에 자기도 존재할 수 없는 구조임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상황이다. 치킨(겁쟁이)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도 나오는 이 게임은 두 명의 운전자가 서로 마주 달리는데 겁 많은 쪽이 먼저 핸들을 꺾게 되고 패자가 된다. 따라서 만일 두 운전자 모두 끝까지 피하지 않는다면 둘 다 생명을 잃는 구조가 된다. 지금 한국 국회의 모습은 서로 양보를 강요하면서 자기는 끝까지 핸들을 꺾지 않겠다고 소리치는 형국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은 상대로 하여금 내가 절대로 피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가 피할 수밖에 없게 만들려고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핸들을 뽑아 버리는 것도 유효한 전략이 된다. 국제정치에서 군비경쟁이나 북한과 미국의 핵 갈등을 설명하던 이론이 국회운영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유는 정당 간 최소한의 신뢰도 형성되지 못해서다.

국회에서 법안이 제출되면 상정하고 이를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다루는 과정이 정상적인 운영이다. 법안의 상정 자체를 막는, 그것도 폭력적으로 막는 일은 국회의 기본적 기능마저 저해하는 행위이다. 갈등이 발생하면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 이를 기화로 자기집단의 결속력을 다지거나 힘을 과시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전략은 장기적으로 어느 정당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18대 국회에서는 의원과 행정부가 3698건의 법률안을 제출했는데 2669건이 미처리로 남아 있다. 미처리율이 72.2%다. 하지만 법률안을 상정조차 하지 못하고 첨예한 갈등을 빚는 법률안들을 고려한다면 처리비율은 2%에 불과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국회를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의 관심과 여론이다. 늑장 원구성도 결국 비판여론에 밀려 이루어졌고, 국회공전도 국민의 비판이 높아지면 정상화되었다. 국회운영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국민의 질타만이 대안인 것 같다. 국회가 언제 경제위기나 세계적 변화의 조류를 실감할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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