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시빌리티’는 사치인가

  • 입력 2009년 2월 9일 20시 05분


지난달 국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법안 심의 과정에서 난동이 있은 후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국회를 ‘권투장(pugilism)’에 비유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사납다(pugnacious)’라고도 했다. BBC방송은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에 ‘죽음의 충돌(deadly clash)’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비슷한 시기 북한 방송에서는 군복 차림의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나와 우리를 ‘짓뭉개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외국인들에게 남한과 북한은 둘 다 코리아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코리안은 ‘시빌리티(civility)’와는 거리가 먼 폭력적, 전투적인 사람들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시빌리티라는 외국어를 사용한 것은 그 단어에 합당한 우리말이 없기 때문이다. 사전(辭典)에는 ‘정중함, 공손함, 예의바름’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시빌리티라는 말의 의미를 완전하게 전해 주지는 못한다. ‘시빌(civil)’이라는 말은 라틴어 civilis에서 나온 것으로 ‘정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시민들 사이의 관계, 또 시민과 그러한 공동체와의 관계’를 의미한다. 그로부터 civil-ization(문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시빌리티는 civilitas에서 나온 것으로 ‘사회 질서를 존중하는 공민(公民)에 걸맞은 행동 양식’이라는 뜻이다. 이렇듯 시빌리티를 우리말에서 하나의 낱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 또 우리 번역에서 그것의 정치 공동체적 측면을 간과하는 것 자체가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시빌리티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코리안은 폭력적”인식확산 우려

민주주의가 제일 먼저 꽃핀 영미권에서는 문명화된 사회와 민주적 정치를 위해서는 폭력보다는 말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상대방과 견해는 달라도 대화는 할 수 있는 시빌리티의 관계가 필수적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즉 절제된 의견 교환(civil discourse)을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110개 항목에 달하는 시빌리티의 구성요건을 수록했다고 하는데 그 첫째 항목이 대화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시빌리티를 고운 눈으로 보는 것만은 아니다. 2003년부터 5년간 호주의 노동당 당수를 지낸 마크 래섬은 시빌리티란 “기득권층이 그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기만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상 타파를 부르짖는 운동가들은 “생존권이 걸려 있는 문제에서 예의범절을 따질 겨를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박할 것이다. 시빌리티를 있는 사람들의 배부른 타령으로 일축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시빌리티는 기득권층만을 위한 개념이 아니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 에티엔 발리바르가 시빌리티를 중시하는 이유는 국가가 시민의 인권과 공민권을 존중하는 것도 그 의미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정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합당한 행동양식을 일부 계층이나 집단의 기만 또는 사치로 치부하고 무질서를 선택하는 것은 민주정치는 물론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국제적으로는 문명사회 일원으로 대접받기도 어렵게 된다. 우리가 폭력과 싸움으로 국력을 소모하고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동안 사회 안팎의 심각한 문제들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체제와 사회를 혁명적으로 뒤집는 것이 아니고 경제위기 등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과감하고 질서 있는 혁신을 추구하는 일이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도 역사적으로 폭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시빌리티를 유지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하였다. 1930년대의 경제공황을 이겨내고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20세기 후반의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동시에 정치, 사회, 경제 개혁도 달성하였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사회는 혁명아닌 혁신 필요

정치권에서는 물론 일반 국민도 폭력과 싸움보다는 이성적인 논쟁, 협의, 그리고 협상을 통한 대승적 차원의 국가 운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질 때 우리의 정치는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것이 될 수 있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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