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래]매니페스토 제출 ‘쇼’였나

  • 입력 2009년 1월 13일 02시 55분


미국 시사주간 타임지의 아시아판 표지에 실린 한국 국회의 싸움판 사진을 보면 참으로 부끄럽다. 지난해 말부터 전개된 한국 국회의 격투기 장면은 이미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었다. 미국 등 선진 민주국가의 언론은 물론 정치 후진국으로 제대로 된 의회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서아시아 국가까지 한국 국회의 모습을 조롱할 정도이다.

18대의원 선거민과 약속지켜야

상당수 서아시아 국가는 의회도 없이 왕권통치를 한다. 이들 국가가 한국 국회의 난투 모습을 예로 들면서 자신들의 정치체제가 의회를 구성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선견지명(?)이 있다고 자평하지 않을까 두렵다.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반에서 싸울 때 너희들이 국회의원이냐고 면박을 주면 싸움을 끝낸다고 하니 국회의 권위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추락하였다.

이런 국회가 오늘 본회의에서 여야가 합의한 50여 개 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키고 나면 사실상 휴회가 되어 쟁점법안을 다룰 2월 임시국회에 대비한 장외투쟁을 구상한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주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본회의장 농성을 해산한 이후 여야 국회의원들은 연일 주요 방송이나 신문에 등장해 소속 정당의 정책 홍보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난투 국회’는 자당이 아닌 타당의 잘못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신성한 국회의사당이 난민촌과 같은 농성장이 되고 국회의원들이 장내에서 기물을 파괴해 아까운 세금을 축내기보다는 장외에서 국민을 상대로 정책홍보전을 전개하는 장면이 더 낫다. 앞으로 10여 일 지나면 민족 최대 명절인 설로 국민 여론 형성에 중요한 시기이므로 이를 겨냥한 여야의 대국민 정책 홍보전은 더욱 치열할 것이다.

의회정치의 원조인 영국은 국회를 ‘parlia-ment’라고 한다. 이는 몸으로 싸움을 하지 않고 말로써 토론을 한다는 프랑스어의 ‘parler’에서 유래한 것에서와 같이 국회는 말로써 토론하여 입법하는 장소이지 결코 우격다짐이나 공중부양을 하고 해머로 기물을 파괴하는 격투기장이 아닌 것이다.

한나라당은 연말 국회의 입법전쟁에서 쟁점법안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구하는 데 소홀했다고 보고 설 민심을 잡기 위해 당보 30만 부 발행, 당원 교육, 쟁점법안 알리기에 앞장설 대표선수단 구성 등 다양한 홍보전을 전개한다고 한다. 민주당 역시 격투기 국회에서 승리하였다고 자평하면서 쟁점법안에 대한 대국민 홍보전을 강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국민 홍보전을 통한 정책 경쟁은 단순히 선전적 홍보 문구 나열이나 서울역 광장에서 귀향객에게 당보나 나눠주는 쇼만으로는 국민 설득 작업에 성공할 수 없다. 18대 국회의원 대부분은 총선 과정에서 공천신청 서류에 의정활동 계획서를 작성해 제출하였다. 한국 국회의원 선거 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매니페스토 방식에 따라 작성된 의정활동 계획서에는 의정활동 계획과 목표, 중요 국정과제에 대한 입법계획이 선거구민과의 약속 형태로 기술되어 있다.

쟁점법안 토론으로 정책대결을

여야는 쟁점법안의 정책 경쟁을 위한 당 차원의 매니페스토를 작성해 이를 국민에게 알려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합의가 안 되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여당, 농성을 다시 해서라도 쟁점법안 통과를 막겠다는 야당의 논리로는 정책 경쟁이 되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은 토크쇼에 출연 또는 해외 골프여행을 하기보다는 수준 높은 정책 개발과 토론을 통해 국가 발전을 위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 매니페스토를 작성해 경쟁함으로써 실추된 국회의 권위를 다소나마 회복하기 바란다.

김영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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