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순원]“괜찮아… ” 가족에게 속삭이자

  • 입력 2008년 12월 17일 03시 06분


신문을 봐도, 텔레비전을 봐도 즐겁고 신나는 소식이 없다. 사실 그런 소식은 저마다 일자리와 가정에서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데 말이나 생각처럼 쉽지 않으니 신문이나 텔레비전엔 뭐 좋은 소식이 있나 이 채널 저 채널 돌려보는 것이다. 따뜻한 소식이라도 많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추운 겨울 다들 잔뜩 웅크리고만 있다.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춥던 날 지방 강연이 있어 늦은 밤 영등포역에 내려 집으로 왔다.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타려고 역 건물을 가로질러 한길로 나오다가 실내에서 방향을 잃어 두 번이나 역 건물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 갔다 했다. 그러느라 다른 때보다 더 유심히 시멘트 바닥 아무 곳에나 종이박스를 깔고 잠을 자고 있는 노숙인들을 보았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라 대부분 건물 벽쪽에 자리를 잡고 잠을 자고 있었지만 더러는 몇 명이 한쪽 구석에 모여 술병 하나를 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거의 다 마흔이 넘고 쉰이 넘은 사람들이었다. 개중엔 보는 눈이 안타까워 다시 돌아보게 되는, 20대로 보이는 청년노숙인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먼 도시에 다녀온 늦은 밤, 이렇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게 여간 다행스럽지가 않다. 누구든 늦은 밤 서울역이나 영등포역을 지나게 되면 바로 그 시간 나를 기다릴 가족의 얼굴부터 떠올린다. 저 사람들도 모두 얼마 전까지는 한집에서 오순도순 정을 나누던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살이가 이렇게 힘든데 살다보면 사람이 왜 좌절할 때가 없겠는가.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대로 영영 주저앉지는 않는다. 본인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려 애쓰고, 가족 역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용기를 북돋운다. 이 추운 겨울, 저곳에 나와 잠을 자는 사람들도 저마다 가족의 따뜻한 배려와 격려를 받았다면 아마 절반 이상은 저대로 집을 나와 거리에 주저앉지 않았을지 모른다.

세상이 어렵고 힘들수록 우리는 누군가의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 경기에서도 그렇다. 힘껏 달릴 때에도 응원이 필요하지만 달리다 넘어져 쓰러졌을 때, 그래서 온통 울고 싶은 마음뿐일 때 아이는 그것을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얼굴에 따라 자신의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 쓰러진 아이를 보고 엄마 아빠가 실수를 책망하듯 함께 낙담하면 아이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어버리고 만다. 그런 분위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승선의 승부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너는 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너를 지켜보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나 달려야 한다고, 누구야 힘내! 하고 엄마 아빠가 불끈 주먹을 쥐어 보이며 응원하면 아이는 지금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자랑스러워하며 결승점을 향해 달려 나간다.

아이뿐이 아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한 지붕 아래 가족 간에 서로 불어넣어주는 용기와 격려야말로 지금처럼 세상살이가 어려운 때 저마다 마음 안에 서로를 비추어 따뜻하게 온기를 나누게 하는 사랑의 빛인 것이다.

며칠 전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하면서 자신이 아직 공부를 해야 할 시절 당장의 가난이 싫어 돈을 벌려고 무작정 가출하려고 할 때 기도로 감싸주시던 어머니의 깊은 사랑과 격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꼭 대통령의 어머니가 그렇게 해서가 아니라, 또 대통령이 그 말을 해서가 아니라 지금처럼 나라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 나도 모르게 다들 어깨가 움츠러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가족 간의 따뜻한 관심과 말 한마디로도 다시 힘을 내게 하는 사랑의 격려가 아니겠는가.

이순원 소설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