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송평인]영화명 ‘한국여자’라야만 하나

  • 입력 2008년 11월 6일 02시 58분


요새는 한국 감독이 만드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모럴(moral)이 없다. 최소한 모럴을 찾으려는 시도도 거의 없다.

그러나 직업적인 관심 때문에 지난달 22일 소르본대 근처 ‘필모테크 영화관’에서 열린 ‘과거와 현재의 한국영화 거장전’에 가봤다. 프랑스어로 된 초대장에는 ‘Une femme cor´eenne(한국 여자)’라는 영화가 개막작으로 나와 있었다.

필름이 돌아가고 나서야 주위의 지인에게서 한국어 제목이 ‘바람난 가족’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제목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 본 적이 없는 영화여서 좋은 기회다 싶었다.

영화를 보면서 기분이 나빠졌다. 영화 속의 우편집배원이 앙심을 품은 변호사의 어린 아들을 납치해서 공사 중인 건물의 옥상으로 들고 올라가자마자 일말의 주저 없이 땅바닥으로 던져버리는 장면에서는 역겨워서 바깥으로 나와 버리고 싶었다.

비록 영화지만 아이를 어떻게 할 때는 범인도 주저하고 망설이게 그리는 게 보통이다. 이 장면에는 그런 게 없다.

상상 속에서 그런 잔인함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까 일단 취향의 차이라고 해두자.

그러나 원제 그대로가 어울릴 법한 이 영화가 프랑스어로는 왜 ‘한국 여자’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프랑스어의 부정관사 ‘une’은 영어의 부정관사보다 훨씬 더 자주 일반(一般)을 지칭하기 위해 쓰인다. 번역자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가와는 상관없이 프랑스인에게 이 제목은 ‘일반적인 한국 여자’라는 의미로 쉽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바람난 변호사 남편 때문에 아이를 잃고 이웃집 남학생과의 성관계로 이끌려 가는 가정주부가, 병으로 고생하던 시아버지가 돌아가고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날 다른 남자와의 섹스를 고백하는 시어머니가 오늘날 한국의 일반적인 여성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이 영화가 영어권에서 소개될 때 제목인 ‘A good lawyer's wife(어느 잘나가는 변호사의 부인)’와 비교해 보면 프랑스어 제목을 꼭 그렇게 지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물론 영화 제목을 다는 것은 영화를 만들고 파는 사람 마음이다. 제목은 검열을 거부한다.

개막식에 영화를 만든 임상수 감독이 초대됐다. 그는 지금 한-프랑스 합작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 제목은 ‘Une femme cor´eenne `a Paris(파리에서의 한국 여자)’다.

이번 영화제는 ‘한국영화 거장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누가 수긍하는 거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거장’ 감독이 관객을 앞에 놓고 한다는 말은 이랬다.

“‘한국 여자’에도 섹스 장면을 많이 담았지만 ‘파리에서의 한국 여자’에는 더 많은 섹스 장면을 담을 계획이다. 많이 즐기시라.”

개막작을 올리는 감독이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이 영화제는 주로 문화부의 예산으로 지탱된다. 영화 제목을 다는 것이야 감독 마음이겠지만 굳이 이 영화를 국민 세금을 들여 ‘한국 여자’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인에게 소개하려고 애쓰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

세금 운운하는 것을 떠나 문화는 이해를 위한 것인데 프랑스에 소개된 그 영화는 불필요하게 바뀐 제목 때문에 오히려 한국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방해하고 있다.

그가 실제로 한국 여자가 대체로 그렇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때 그는 ‘한국’이란 말로 자신의 주관에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가두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만들 ‘파리에서의 한국 여자’가 벌써 걱정된다.

송평인 파리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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