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신광영]시위대의 시민폭행은 인권침해 아닌가

  • 입력 2008년 10월 29일 19시 47분


본보 사진부 변영욱 기자는 8월 초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종로소방서 구급차에 실려 온 기록이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경찰이 어떻게 때리던가요?”

“네? 저는 경찰이 아니라 시위대에 맞았는데요.”

“그래요? 그럼 됐네요.”

미처 대꾸할 틈도 없이 인권위 직원은 전화를 끊었다.

변 기자는 6월 서울 종로구 신문로 새문안교회 앞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취재하던 중 본보 기자임이 알려지면서 시위대에 집단 구타를 당했다. 가까스로 탈출한 그는 본사 사옥에 도착하자마자 실신했다.

변 기자는 “인권위로선 시위대의 인권이 우선이겠지만 폭행 피해자의 심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건 그 자체로 반인권적”이라고 말했다.

전직 교사 황모(58) 씨도 6월 말 시위대에 포위됐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손이 떨린다. 당시 그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집에 가기 위해 내비게이션 신호만 따라가다 시위대가 점거 중이던 세종로 사거리에 들어섰다.

시위대는 “왜 차로 치려 하느냐”고 흥분하며 그를 끌어내 주먹으로 얼굴과 목을 때렸다. 또 몽둥이로 차 유리창을 부숴 차 안에 있던 그의 부인도 두려움에 떨었다.

29일 기자와 연락이 닿은 황 씨는 피해 보상은커녕 경찰에 신고도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누군가 나를 카메라로 찍어댔는데 괜히 신고했다가 사진이 인터넷에 올려져 해코지를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인권위는 27일 경찰이 촛불집회 진압과정에서 공권력을 남용해 시위대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29일 “경찰관 501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촛불집회의 전반적인 폭력성에 대한 판단 없이 일부 과잉 대응사례만 언급한 것은 균형감을 잃은 결정”이라고 반박했다.

시위대의 인권과 부상당한 경찰 사이의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시위대에 의한 시민과 기자 등의 인권 침해에 대해선 모두 침묵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위 설립 취지상 공권력에 의한 개인 인권의 침해만 논의 대상”이라고 일축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인권단체들도 “시위대와 시민들 간의 폭행은 개인 문제로 경찰의 조직적인 인권침해에 비하면 지엽적인 문제”라는 견해다.

그렇다면 시민과 기자의 ‘보호받지 못하는 인권’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까.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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