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현지]학교가 지옥같은 다문화가정 아이들

  • 입력 2008년 10월 25일 03시 01분


몽골 소녀 토야(17) 양은 한국인 아버지와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지난해 한국에 왔다. 고등학교 2학년에 들어갈 나이였지만 말이 서툴러 중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그러나 1년이 안 돼 학교 가는 일은 ‘지옥’으로 변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뒤통수를 얻어맞기도 하고 점심 때 혼자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일도 있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최근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취직했다.

국제결혼이 늘면서 다문화가정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지 20년이 지났다. 그러나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낯선 땅’이다.

학교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가장 먼저 한국 사회를 경험하는 곳이다. 친구도 많이 사귀고 성적이 좋은 아이들도 있지만 상당수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다가 학교를 그만둔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원희목(한나라당) 의원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자녀 10명 중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2.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교생 연령인 만 16∼18세 청소년 10명 중 7명꼴로 정규 교육권 밖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연령대의 한국 청소년의 미취학률(8.7%)에 비해 8배나 높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학교를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과 학습 과정을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 학부모는 “베트남 어머니를 둔 아이가 자기 아이 반에 배치됐다고 학교에 항의하러 가는 학부모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외국인근로자나 결혼이주여성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낮 시간에 PC방이나 당구장에서 소일하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인종, 문화, 말이 다르다는 이유로 미래의 꿈에 대한 의지마저 잃은 것이다.

학령기 다문화가정 자녀는 2만5000여 명에 이른다. 이 중 절반은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이들을 방치할 경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사회 통합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차별받는 것에는 쉽게 흥분하면서도 우리 사회 안의 다른 인종과 문화를 인정하는 데 인색한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다문화가정도 엄연한 우리 사회의 일원인 만큼 따뜻하게 포용하는 자세가 아쉽다.

김현지 교육생활부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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