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불황기일수록 핵심 사업에 집중해야죠”

  • 입력 2008년 10월 25일 03시 01분


크리스 주크 베인&컴퍼니 글로벌 전략 사업부문 대표는 자사의 핵심 사업에만 집중하는 것이 불황기에서의 성공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베인&컴퍼니
크리스 주크 베인&컴퍼니 글로벌 전략 사업부문 대표는 자사의 핵심 사업에만 집중하는 것이 불황기에서의 성공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베인&컴퍼니
[DBR 인터뷰] 크리스 주크 베인&컴퍼니 글로벌 전략 사업부문 대표

“불황기일수록 자사의 핵심 사업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고 여기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특히 다각화라는 그릇된 열정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베인&컴퍼니의 글로벌 전략 사업부문 대표인 크리스 주크(Chris Zook) 씨가 한국 기업에 내놓은 충고다. 최근 포럼 참석차 내한한 그는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불황기에 바람직한 기업 전략 수립 및 실천 방안을 설명했다. 주크 씨는 “과거에 비해 위기 확산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악영향도 커지고 있지만 기업들의 전반적인 대응 능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며 “최근 금융위기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금융위기와 같은 큰 어려움을 겪고도 살아남은 기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매우 강력하고 잘 정의된 핵심 사업(strong core)을 보유하고 있고 경쟁사보다 핵심 고객의 충성도가 2, 3배 높으며 과도한 다각화의 유혹을 피한 기업이다. 대표적 예가 영국 유통업체 테스코다. 테스코는 경쟁사 세인스버리와 함께 1930년대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부동의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글로벌 소싱으로 유명한 홍콩 의류회사 리앤드펑도 마찬가지다.

호황기와 달리 불황기에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핵심 사업에만 집중해야 한다. 불황기에는 많은 위험을 안고 가서는 안 된다. 불황기에 가장 큰 위험 요인은 핵심 사업과 큰 관련이 없는 분야로의 확장을 시도하거나 핵심 사업 영역에서 경쟁사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릇된 열정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애플이나 구글은 충성도가 높은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삼성이나 LG 브랜드를 애플이나 구글처럼 좋아하는 고객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애플은 고객이 아이팟이나 맥컴퓨터를 구매한 다음 날 ‘당신의 구매 경험을 타인에게 추천할 의향이 있습니까’, ‘구매 경험에 만족하십니까’란 질문이 담긴 e메일을 보낸다. 고객이 아니라고 답변하면 다양한 방법을 통해 후속 조치를 취하고 연락을 한다. 반면 대부분의 생활가전업체는 애플처럼 신속하고 즉각적인 피드백 시스템이 없다.

최고 기업일수록 반복 적용이 가능하고 신속한 피드백을 중시한다. P&G가 유니레버보다 높은 점유율을 차지한 것도 고객의 상세한 피드백을 신속히 취득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야 강력한 핵심 사업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나.

“강력한 핵심 사업을 갖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다섯 가지 지표가 있다. △업계 전체의 가격이나 기술 표준을 정할 만큼 영향력이 클 것 △수익 점유율이 높을 것 △경쟁사보다 고객 충성도가 높을 것 △같은 제품을 생산해도 경쟁사보다 낮은 단가를 실현할 수 있을 것 △시장점유율이 높을 것 등이다.

수익원과 시장점유율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1990년대 델 컴퓨터의 개인용 PC 시장점유율은 15%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델은 전체 시장 수익의 90%를 가져갔다. 경쟁사인 컴팩과 회사 규모는 비슷했지만 델이 더욱 강력한 핵심 사업을 보유했기 때문에 수익 점유 비율이 높았던 것이다.

다섯 가지 정의가 당연해 보이지만 내가 만난 많은 경영자 중 자사의 핵심 사업과 경쟁 우위를 명확히 열거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기업이 전략적 과오를 저지르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핵심 사업에만 집중하다 보면 신성장 동력 발굴 기회를 놓칠 수도 있지 않나.

“그렇지 않다. 회사 운명을 걸고 낯선 영역으로 뛰어드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다. 만약 회사 전체 자산의 5∼10%를 투자한다면 모르지만 회사의 우선순위 자체를 신사업에 두는 것은 지금 같은 불황기에는 매우 위험하다. 인텔은 2000년 반도체 외의 다양한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가 큰 손실을 봤다. 새로운 ‘장난감’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집중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산업에서든 최고경영자(CEO)는 자사의 강력한 핵심 역량을 파악하고 방어해야 한다. 핵심 역량은 단순히 물질적 측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직 문화와 같은 정신적 개념도 포함한다. 독일의 다임러와 미국의 크라이슬러는 모두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지만 완전히 다른 조직 문화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둘의 핵심 사업은 서너 단계 떨어져 있었다. 서로 다른 핵심 고객층, 유통 채널, 기술 표준, 생산설비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노점상과 고급 호텔 식당을 모두 ‘식당’이라 묶어 표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많은 해외 경영 대가는 한국 기업이 추가 성장을 위해 인수합병(M&A) 같은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강력한 핵심 사업을 보유한 인수 기업이 불황기에 자신의 핵심 사업을 보호하거나 더욱 강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M&A라면 괜찮다. 하지만 핵심에서 멀리 떨어진 영역으로 뛰어들거나 규모가 작은 기업들끼리 덩치를 키우기 위해 합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빅뱅(big bang)’과 같은 대변혁을 시도한 M&A 역시 대부분 실패했다. AOL의 타임워너 인수, 다임러벤츠의 크라이슬러 인수, 프랑스 기업인 비벤디의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 등이 대표적 실패 사례 아닌가. 우리의 조사 결과 빅뱅 식 M&A의 성공 확률은 10%에도 이르지 못했다.”

―현재의 금융위기가 산업구조 변화를 촉진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20년 전에는 격변기를 맞이한 산업이 전체의 15∼20%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 비중은 70%대에 육박하고 있다. 항공 미디어 에너지 금융산업이 대표적이다. 격변기에는 많은 기업이 파산한다. 현 금융위기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진입하는 첫 단계일 뿐이다. 이번 경기 침체는 2∼4년 이어질 것이다. 이에 따른 승수 효과(multiplier effect)도 엄청날 것 같다.”

―기업들의 위기대응 능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완전히 반대다. 덩치가 크고 관료주의 문화가 강한 기업들은 환경 변화에 점점 더딘 속도로 반응하고 있다. 많은 기업은 여전히 자신의 핵심 사업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종종 최악의 결정을 내린다. 찰스 다윈의 말처럼 가장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잘 적응하고 대처하는 자가 살아남는 상황이 도래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크리스 주크 대표는…

베인&컴퍼니의 글로벌 전략 사업부문 대표로 윌리엄스칼리지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석사, 하버드대에서 예술학 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술 저널과 신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왕성한 기고활동을 하고 있다. 2001년 첫 저서 ‘핵심에 집중하라(Profit from the Core: Growth Strategy in an Era of Turbulence)’에 이어 2004년 ‘핵심을 확장하라(Beyond the Core: Expand your Market without Abandoning your Roots)’를 출간해 베스트셀러 저자로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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