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기찬]세계 소형차시장 ‘금맥’ 뚫어라

  • 입력 2008년 10월 15일 02시 57분


초등학생 자녀가 영어선생님의 발음이 나쁘다고 불평한다.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맞장구쳐주면서 함께 욕을 한다면 자녀 마음이 편할진 모르지만 평생 영어실력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이것이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이다. 문제를 환경 탓으로 돌리고 이를 바꾸려는 종은 도태됐고, 자기를 바꿔 환경에 적응한 종만 계속 진화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자동차산업의 시장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시장은 판매량이 30% 이상 감소했다. 특히 영국 시장은 50%, 스페인은 45% 정도 격감했다. 세계 자동차산업을 이끌어 온 미국의 ‘빅 3’는 지금 생사의 경계를 넘나든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살아나갈 전략은 없는가. 바로 보물찾기(treasure hunting)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의 짜릿한 보물찾기가 이미 시작됐고 스스로 변화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자연선택이론을 통해 중소형차 시장을 키워온 까닭이다.

첫째, 현대자동차의 전체 차종 중 중소형차 비중은 48.9%로, 도요타의 38.5% 등 선진기업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고 중소형차 시장을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세계 신흥시장과 선진시장의 차별화가 가속되는 가운데 고유가로 중소형차 수요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번 위기의 특징은 상대적으로 대형차에 특화한 선진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1, 2차 오일쇼크는 세계 경제에 엄청난 위기를 불러왔지만 결과적으로 일본 자동차산업이 미국의 빅 3를 밀어내는 분기점이 됐다. 도요타는 경제침체를 기회로 중소형차를 통해 불황기 시장 관리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둘째, 원-달러 환율 급등 또한 한국차의 취약한 원가경쟁력 회복에 도움을 준다. 1997년의 외환위기가 아이로니컬하게도 오늘날 한국 자동차산업이 세계 5위로 도약하는 데 숨은 주인공이 됐다.

그 결과 고비용 구조에 시달리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가격경쟁력이 좋아지고 있다. 자동차의 국산화율이 98% 정도라는 점에서 달러 가뭄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에 희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26억 달러 흑자를 냈고, 올해는 더 많은 흑자를 기록하리라는 예상이다.

셋째, 경쟁 환경 측면에서 기회다. 미국 빅 3 자동차 회사의 신용도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고 디트로이트는 황폐돼간다. 불행히도 이들이 차지하던 시장이 중소형차로 이동하고 있지만 미국의 빅 3는 투자 여력도 부족하고 중소형차에 관한 한 경쟁력이 없다. 이 또한 한국차에 기회다.

결론적으로 단기적인 시장침체로 어려움을 겪겠지만 한국의 자동차산업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다. 소형차 시장은 이번 금융위기로 크게 흔들리는 미국과 유럽이 아닌 피라미드의 밑 부분(Bottom of Pyramid·BOP)에 속하는 신흥국가가 주도한다.

게다가 한국 기업은 미국, 유럽 이외에 포스트 브릭스 시장을 이미 상대적으로 많이 확보해뒀다. 동유럽 17.8%, 중동 13.5%, 중남미 11.6%로 비중을 대폭 높여놨고 아프리카, 태평양 지역의 소형차 시장에서는 절대적으로 강하다.

그러나 핵심역량도 오래가지 않는다. 핵심역량만 중시하고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않으면 조직이 경직된다. 그 답은 자연선택이론이다. 다만 급성장기에 드러나지 않던 부품업체의 심각한 수익성 위기가 부각될 수 있다.

무조건 땅을 판다고 우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수맥을 따라 파야 우물이 나온다. 중소형차의 맥을 따라가면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가 나온다. 언제나 원인을 환경 때문이라고 탓하기만 하면 자신이 도태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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