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심경욱]‘세계적 브랜드’ 떠오른 한국군

  • 입력 2008년 9월 30일 02시 58분


고유가로 국제사회가 몸살을 앓는 모습을 보며 필자의 머리에 맴돌았던 생각은 엄청난 오일달러가 유입되는 산유국이라면 우리의 훌륭한 방산시장이 될 수 있을 거란 사실이었다. 지난해 늦가을 무렵, 무턱대고 찾아간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그 같은 생각을 사실로 확인해 줬다.

자원부국들, 소프트파워 이전 원해

군사력 재정비에 팔을 걷어붙인 알제리와 리비아는 제쳐 두고라도 유전의 규모가 작은 이집트에도 군 현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경제성 낮은 암반유만 가진 모로코까지도 중동 오일머니의 유치로 사회 인프라 재건과 병행하여 군 전문성 제고를 외치고 있었다.

올 8월 말까지 네 차례 연거푸 찾아간 북아프리카의 마그레브 국가들이 원하는 건 우리의 방산물자만이 아니었다. 무기를 구매할 테니 우리 육군의 교리부터 병력 훈련 기법은 물론, 실전부대가 갖춘 지휘통제 체계와 지원 장비까지 패키지로 전수해 달라고 말했다. 어느 나라 공군 총수는 훈련기를 살 테니 공군 파일럿을 양성하는 교육 인프라부터 항공기 정비라인까지 함께 구축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또 다른 국가는 한국 해군이 쓰던 잠수함이라면 당장에라도 와서 살펴보고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C4I체계는 세계 최첨단의 유럽 체계를 구매하겠지만 그 체계를 운용할 엔지니어만큼은 한국에 보낼 테니 2년 동안 최고급으로 키워줄 수 없느냐고 물어왔다.

주목할 사실은 북아프리카 나라만이 우리 군의 소프트파워를 탐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동남아 국가는 한국 육군의 특수전 역량을 탐내는가 하면 중동과 남미의 크고 작은 국가는 공군에 파일럿 훈련 위탁을 의뢰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이 해군을 창설하려고 2006년 봄 우리의 퇴역 고속정 3척을 증여받고, 이 시간에도 그 나라 장교들이 우리 해군의 선진기법을 이수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동 및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와 남미 등지의 자원부국은 국가별 차이는 있으나 교통 통신 인프라와 석유 화학 플랜트의 건설 등 경제개발 분야뿐만 아니라 군대의 현대화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전략적 가치가 크고 선투자성 외교가 필요한 이 국가들이 우리와의 군사협력을 적극 원하고 있다. 강국에의 종속과 전후의 빈곤에서 벗어나 우뚝 선 한국군의 선진 경험이야말로 매력적인 학습 내용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걸작품은 위기 속에서 태어난다고 했던가. 한국군은 1948년 창설되기 무섭게 엄청난 민족상잔의 전쟁을 겪어야 했다. 이후 남북 대치상황 속에서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1968년 초 청와대가 기습을 당한 뒤에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했다. 그 후 미국의 세계 전략이 변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자 심각한 위기감에서 자주국방경영혁신 개념을 창출했다. 목적세인 방위세를 신설했고 전력증강 사업인 ‘율곡계획’을 추진했으며 강국의 선진 국방제도를 도입해 한국화했다. 그리고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의 이양이라는 또 다른 전환점을 향하고 있다.

軍혁신노력-국민 애정 필요한 때

우리 군이 10월 1일, 건군 60주년을 맞이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주변 강국 사이에서 국가 자존(自尊)의 최후 보루로서 소임을 다하던 우리 군이 어느새 한국이 자랑할 수 있는 세계적 브랜드가 됐다. 60년의 또 다른 역사를 써나갈 한국군 앞에 세계 각지에서 글로벌 코리아를 구현하는 경제인을 위한 든든한 힘의 그림자가 되는 것은 물론, 미래 국익을 창출하는 데도 제대로 한몫하라는 새로운 임무가 주어져 있다. 군의 혁신적 노력과 국민의 애정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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