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인숙]희귀병 치료제 개발 나서자

  • 입력 2008년 9월 27일 03시 00분


일간지 국제면에 영화 ‘로렌조 오일’의 실제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로렌조 오돈이 숨졌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이 영화는 희귀질환을 앓는 아들을 위해 치료제 개발에 나선 가족의 사랑을 다뤘는데 개봉 당시 많은 이의 눈물을 자아내며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로렌조는 6세 때 부신백질이영양증이라는 희귀질환 판정을 받았다. X염색체에 들어 있는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데 몸 안의 ‘긴 사슬 지방산’이 분해되지 않고 뇌에 들어가서 신경세포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의사들은 로렌조가 8세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부모는 로렌조 오일을 개발해 생명을 서른 살까지 연장시켰다.

2년 전에는 제2의 로렌조 오일 개발 소식도 전해졌다.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의 간부였던 존 크롤리가 치명적 희귀 유전질환인 폼페병에 걸린 두 자녀를 위해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젠자임이라는 회사와 함께 치료약 개발에 나섰다. 그는 6년간의 노력 끝에 치료제인 마이오자임을 만들었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희귀의약품 승인을 받았다. 폼페병은 인구 10만 명에 한 명 정도 발병하는 질환으로 국내에도 20여 명의 환자가 있다.

모두 영화 같은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이들의 노력으로 부신백질이영양증이나 폼페병을 앓는 희귀질환 환자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됐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희귀질환 환자는 치료제가 없어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다가 생을 마감한다.

희귀질환의 상당수는 유전질환이다. 유전질환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태어날 때는 정상이지만 성장하며 증상이 나타나거나, 정상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희귀질환이 나타나기도 한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이 위험인자가 밝혀진 질환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접하게 될 수 있는 질환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등록된 희귀질환은 5000여 종에 이르지만 치료제가 없거나 사용이 제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 제약사는 상업성이 떨어진다고 하여 약품 생산을 중단하기도 한다. 경제 논리가 환자의 생명권을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셈이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생산 중단은 환자에게는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다행히 최근 들어 다국적 제약사의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이 눈에 두드러진다. 미국 연구제약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303종의 희귀질환 치료제가 개발되는 중이다. 다국적 제약사가 희귀질환 치료제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대부분 고가이며, 미국시장에서 시장 독점권을 7년간 부여하기 때문이다.

고가의 의약품을 판매하기 위한 사업전략에 불과하다고 폄훼할 수 있겠지만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희귀의약품은 생명의 끈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가 의약품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기업이 개발 중인 고셔병 치료제와 파브리병 치료제가 출시되면 현재 사용하는 초고가 수입약품을 대체할 수 있어 건강보험 재정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국내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를 위해 정부가 지원한 금액은 76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국내에서 개발된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상당 부분을 수입약품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국내 희귀난치성 질환연합회에 가입한 회원은 33만여 명, 실제 희귀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은 약 50만 명으로 추정된다. 정부와 국내 제약사가 이들의 고통을 헤아려 관련법 개선과 연구개발에 나서길 기대한다.

박인숙 질병관리본부 희귀난치성질환센터장·울산대 의대 소아심장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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