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뛰는 지방자치]<7>‘친환경농업 메카’ 꿈꾸는 전남

  • 입력 2008년 9월 9일 02시 56분


줄어드는 농약, 살쪄가는 농가… 전남은 ‘녹색 혁명’ 중

친환경 재배 면적 전국 최대 확보

전국 명품 쌀 5년 연속 최다 선정

생산농가 소득 2년새 1784억 늘어

전남 장흥군 용산면 운주마을.

해발 406m의 뒷산이 마을을 감싸고 논과 개울이 마을 앞에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4일 이 마을을 찾았을 때 들판에는 검붉은 낟알이 익어가고 있었다. 10월 중순에 수확하는 적토미(赤土米)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는 적토미는 1kg에 1만 원을 받는다. 일반 쌀보다 4배나 비싸지만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 이 마을 주민들은 적토미뿐 아니라 녹토미, 향기 나는 쌀도 친환경으로 재배하고 있다.

마을 주민 이영동(56) 씨는 “소출(所出)은 적고 손이 많이 가지만 소득은 일반 벼보다 월등히 높다”며 “고품질과 기능성을 갖춘 쌀만이 농촌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5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성월마을.

이곳에선 포도 수확이 한창이었다. 이 일대 포도밭 70.2ha 가운데 유기농, 무농약, 저농약 등 친환경 재배 면적은 50ha로 70%가 넘는다. 주민들은 2005년부터 포도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단위 면적당 친환경 포도 소득이 벼보다 3배 정도 높아 작목을 전환했다.

지금은 130농가가 영농조합법인을 꾸려 연간 1050t의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36억 원으로 가구당 2700만 원 정도의 소득을 올렸다.

박일주(63) 영농조합법인 대표는 “2010년부터는 전체 면적을 친환경농법으로 바꿔 가구당 5000만 원 소득시대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 친환경농업의 메카

전남도가 친환경농업을 육성하는 ‘신(新) 농정 프로젝트’로 침체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친환경=전남’이란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고품질 쌀 등 농산물 판매가 늘고 소득도 높아졌다. 친환경 농자재를 생산하는 업체가 속속 입주해 지역경제를 살찌우고 생태환경이 복원되는 부수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전남도가 친환경농업에 눈을 돌린 것은 2004년. 농업은 포기할 수 없는 생명산업인 데다 수입개방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안전한 농산물 생산밖에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전남도는 먼저 ‘생명식품 5개년 계획’을 세웠다. 선진국 수준의 친환경농산물 생산기반을 갖추고 유통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친환경 표준 농법을 보급하고 친환경 농자재 구입비를 지원하면서 친환경농산물 인증면적을 해마다 늘려갔다.

그 결과 인증면적은 2005년 1만3772ha에서 2006년 2만9431ha로 급격히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전국 인증면적의 53%인 6만5619ha를 확보했다. 올해는 64% 선인 7만9000ha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전남도는 2010년 저농약 농산물 인증제도 폐지에 대비해 친환경농업기금을 조성하고 올해부터 인증단계를 끌어올리기 위한 인센티브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홍영민 전남도 친환경정책담당은 “2004년까지만 해도 전국 8위에 머물렀던 친환경 인증면적이 2년 만에 전국 1위로 올라섰다”며 “5개년 계획이 끝나는 내년에는 전국 인증면적의 80% 선에 육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 생명식품산업 집중 육성

친환경 재배 면적 확대는 고품질 쌀 생산으로 이어졌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와 농림부가 공동으로 실시한 ‘2007 전국 시중 유통 브랜드 쌀 베스트 12 평가’에서 전남은 해남의 ‘한눈에 반한 쌀’, 강진 ‘봉황쌀’ 나주 ‘왕건이 탐낸 쌀 골드’ 등 5가지가 선정됐다.

전남 쌀은 2003년부터 실시된 평가에서 5년 연속 가장 많이 선정되면서 전국 최고의 명품 쌀 입지를 굳혔다.

품질이 좋아지고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서 쌀 판매량도 늘었다. 2004년 118만6000포대(1포대 20kg)에서 지난해 165만2700포대로 증가했다. 가격도 2005년 한 가마(80kg)당 13만2000원에서 지난해 14만8000원으로 뛰어 쌀 생산농가 총소득은 1784억 원 늘었다.

친환경 농자재 소비가 늘면서 생산업체도 2004년 39곳에서 지난해 101곳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고용인원은 214명에서 500여 명으로 늘었고 연간 매출규모도 같은 기간 187억 원에서 500억 원으로 2.7배나 증가했다.

전남도는 친환경농업 노하우를 살려 ‘생명식품 산업의 고장’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2012년까지 고품질 안전 축산물을 생산하는 ‘녹색 축산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또 친환경 농식품 생산, 가공, 유통이 가능한 복합단지를 조성하고 식문화 체험 및 교육센터를 건립하는 등 식품산업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고근석 전남도 농정국장은 “따뜻한 날씨, 오염되지 않은 땅, 맑은 공기 등 전남은 친환경 먹을거리 생산의 최적지”라며 “고품질 안전 농산물의 판로를 넓히고 가공식품분야에도 진출해 생명식품산업을 전남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안=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유기농이 준 또다른 선물 ‘생태계 복원’

멸종위기 긴꼬리투구새우 곳곳 발견… 곤충-철새도 늘어

친환경 유기농법 확산으로 생태계가 살아나고 있다.

멸종위기종인 긴꼬리투구새우(사진)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논에 서식하는 곤충도 늘어나고 있다.

전남 무안군 무안읍 용월리 정한수(54) 씨는 6월 왕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논에서 긴꼬리투구새우 수십 마리를 발견했다. 정 씨는 “30여 년 전 자취를 감췄던 희귀생물을 보면서 생태환경이 살아나고 있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안군은 올해 2800여 농가가 4200ha 논에서 제초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우렁이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최근 전남 장흥군 관산읍 하발리 양촌마을 논에서도 긴꼬리투구새우가 m²당 30마리 정도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전남 무안 장흥을 비롯해 강진 해남 영광 등 5개 군에서 긴꼬리투구새우 서식지를 확인했다.

긴꼬리투구새우는 모내기가 끝날 때 알을 낳은 후 7월 하순경 소멸하는 1년생 생물. 모기 유충이나 식물 플랑크톤, 잡초를 먹고 살아 환경적 가치가 높은 종이지만 1970년대 이후 농약과 화학비료의 남용으로 개체 수가 크게 줄어 환경부가 멸종위기 2급 희귀생물로 지정했다.

전남도농업기술원이 최근 강진군 성전면에서 생물다양성 조사를 벌인 결과 농약을 사용한 논에서는 기생벌과 메뚜기 등 각종 곤충 55마리가 관찰된 데 반해 유기농 논에서는 78마리로 집계됐다.

보성군 조사에서도 유기농 재배 논 44마리, 농약을 사용한 논 23마리로 유기농 재배 지역 토양에 다양한 곤충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인 순천만과 해남군 고천암호 철새도 늘었다. 순천만의 경우 1월 흑부리오리, 청둥오리, 고방오리, 민물도요, 왜가리 등 50종 1만1500여 마리가 찾아와 개체 수가 1년 전에 비해 두 배 늘었다. 친환경농업이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철새들의 서식환경까지 바꾼 것이다.

토양도 복원되고 있다. 전남도가 최근 사과 등 10개 작목 과수원 150곳을 대상으로 토양 염류농도를 조사한 결과 0.60ds/m으로 2003년 0.84ds/m에 비해 29% 줄어들었다. 이는 토양 오염이 줄면서 작물 수분 및 양분 흡수율이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무안=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전남 명품 쌀 2, 3년 뒤엔 경기미 추월”

■ 박준영 전남지사

박준영(사진) 전남지사는 친환경농법 전도사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한때 농사를 짓기도 했던 박 지사는 취임 이후 농촌 회생의 해답을 친환경에서 찾았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신념을 갖고 추진했다.

박 지사는 “친환경농업을 하자고 할 때 ‘어려운 길을 왜 가려고 하느냐’, ‘농민들이 따라줄 것으로 생각하느냐’며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박 지사는 “처음에 저농약도 어렵다고 했던 농민들이 이제 무농약, 유기농에 도전하고 있다”며 “친환경은 우리 농업이 가야 할 방향이고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난해 전남의 친환경 농산물 생산량은 69만1020t으로 전국 생산량의 39%를 차지했다.

박 지사는 “전남 농산물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감을 심어준 게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친환경농업을 추진하면서 박 지사는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경기미를 따라잡아 전국 최고 명품 쌀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해 경기미는 한 가마(80kg)에 16만5000원, 전남 쌀은 14만8000원으로 1만7000원의 격차가 났다.

박 지사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경기미는 가격이 1.2% 상승한 반면 전남 쌀은 12.1%나 올랐다. 2, 3년 후에는 경기미보다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지사는 “지난해 친환경농산물 시장 규모는 1조9000억 원 정도였지만 2020년에는 6조14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며 “전남이 전국 제1의 안전 농식품 공급기지로 자리 잡으면 전남은 낙후의 상징에서 벗어나 부의 농도(農道)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안=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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