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진짜 개혁’의 키워드

  • 입력 2008년 8월 27일 02시 46분


1990년대 후반 인도 재무장관을 지낸 비제이 켈카르 박사는 시장 친화적 개혁에 깊이 관여했다. 줄곧 폐쇄경제를 고수하다 정책 기조를 개방과 경쟁으로 바꾼 뒤 나타난 인도의 변화에 대해 그는 한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가난이라는 어젠다를 추구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한 일보다 불과 몇 년 동안 경쟁이라는 어젠다를 추구함으로써 그들을 위해 한 일이 훨씬 더 많았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도 정책과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힘입었다. 중국은 인도보다 13년 앞서 1978년부터 개방과 외자 유치, 경쟁과 인센티브 도입을 통해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능력 있는 사람이 먼저 부자가 되라는 선부론(先富論)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잠에서 깨어난 중국은 30년간 질주를 거듭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친디아(중국과 인도)의 급부상은 21세기 세계사적 변화의 핵심 키워드다. 때로 주춤거리기도 하고 갈등도 없지 않겠지만 시장(市場)에 눈을 뜨면서 세계무대에 복귀한 두 나라가 큰 흐름을 바꾸지는 않을 것 같다. 미국 저널리스트 로빈 메레디스는 앞으로 수십 년 뒤 세계에는 미국 인도 중국이라는 세 개의 강대국이 존재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산업화에 이은 민주화의 달성은 한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민주화 20여 년을 거치면서 잃은 것도 있다. 지나치게 평등에 집착하고 경쟁을 금기시하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경제사회적 활력을 떨어뜨렸다. 과거 압축성장의 그늘에 대한 반작용과 함께 민간부문 통제와 정부개입 확대를 ‘개혁’으로 착각한 데 따른 것이었다.

잘못된 인식은 1980년대 운동권 시각이 국정(國政) 곳곳을 지배한 노무현 정부에서 절정에 달했다. 우리 경제가 2002년부터 이어진 세계경제의 장기호황 열차에 탑승하는 데 실패한 채 불황으로 급변한 경기 흐름에 맞닥뜨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가속화되는 좌향좌에 대한 다수 국민의 불안과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망은 정권교체를 이끌어낸 원동력이었다. 무능, 독선, 위선의 3박자를 고루 갖추고도 한껏 득세했던 ‘정연주형(型) 사람들’의 허상(虛像)도 벗겨졌다. 우리 사회를 짓눌러온 사이비 개혁의 도그마에서 벗어나 경제 노동 교육 언론 등 각 분야에서 경쟁과 개방, 시장과 효율에 입각한 ‘진짜 개혁’을 서두르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아닐까.

같은 조건으로 경쟁에 참여할 수 없는 장애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독거(獨居)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꼭 필요하다. 그러나 켈카르 전 장관의 코멘트가 시사하듯 이를 위해서도 경쟁회피가 아닌 경쟁촉진적 개혁을 통해 경제의 활력을 살리고 파이를 키우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 경쟁과 공존은 양립 불가능한 개념이 아니다.

공기업 개혁과 관련해 벌써 나타났듯 변화에 대한 저항도 따를 것이다. 많은 사람이 머리로는 경쟁을 받아들여도 몸으로는 꺼린다. 경쟁은 늘 자신과 무관할 때만 좋은 것이라고 한 영국 칼럼니스트 찰스 윌런의 통찰력 있는 지적처럼.

하지만 우리와 자식들이 세계에서 당당하게 인정받는 나라를 정말 원한다면 괴롭더라도 경쟁과 개방을 키워드로 하는 국가 개혁은 필수적이라고 나는 믿는다. 껍질을 깨는 고통 없이 의미 있는 성취를 기대하긴 어렵다. 정부와 정치권 역시 더는 머뭇거리거나 시행착오를 거듭할 여유가 없다.

권순활 산업부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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