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광고주 협박’과 기업인들

  • 입력 2008년 7월 11일 03시 00분


메이저 신문 광고주 협박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일부 세력의 항의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폭언과 욕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피해 기업 관계자가 검사에게 “겪어보면 죽을 지경인 줄 알 것”이라고 말했다고 어제 동아일보 기사는 전한다. 검찰 간부는 “검사실도 이 정도인데, 전화 주문이나 상담을 주된 영업 형태로 하는 업체의 피해가 얼마나 클지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좌파세력이 ‘언론소비자 운동’이라고 치켜세우는 광고주 협박의 실체도 느꼈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메이저 신문, 특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노(盧) 정권 당시 두 신문의 기자나 간부가 공직자와 만날 때는 ‘접선’하듯이 했다. 공무원의 인사상 불이익을 의식해 식사 후 식당 안에서 헤어지는 것이 암묵적 관행이었다. 보도가 정확해도 정부를 비판하면 시달려야 했다. 정권에 빌미를 주지 않도록 기자들이 보내온 기사의 팩트와 문장 전개를 밤늦게까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노 정권의 압박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역사와 영향력에서 한국 언론을 대표하는 두 신문은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행정부처 및 공기업의 공익광고 배정에서 철저히 제외됐다. 반면 시장 영향력이 현저히 낮고 반(反)시장-반기업 논조가 강한 몇몇 군소신문은 ‘정당한 몫’보다 훨씬 많은 특혜를 누렸다. 과학발명 꿈나무를 키우기 위한 대회조차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봤다.

권력의 입김은 민간기업에도 미쳤다. 메이저 신문에 주로 광고하는 기업에는 유무형의 압력이 가해졌다. 좌파 군소매체에도 같은 대우를 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권력의 풍향(風向)에 민감한 기업인들의 보신(保身)심리까지 겹쳐 기업과 일부 매체의 뒷거래도 적지 않았다. 기업과 기업인을 공격하는 기사를 쏟아낸 몇몇 신문, 방송, 인터넷매체를 먹여 살린 것은 그들의 단골 비판 대상인 대기업들이었다.

정권 교체를 계기로 시장 원리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10년 좌파 세상’의 뿌리는 깊었고 그늘은 넓었다. 사회 각 분야에 거점을 구축해 ‘그들만의 천국’을 누리던 세력은 ‘쇠고기 문제’를 고리로 총공세로 나왔다. MBC PD수첩의 초대형 과장·왜곡보도로 대표되는 선전·선동도 잇따랐다.

광고주 협박사태는 크게 보면 이 연장선상에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와 기업 친화를 강조하면서 시대 역행적 좌파흐름과 정면대결해온 주류(主流)신문의 재정적 기반을 흔들기 위해서였다.

기업인들은 “메이저 신문들이 없었다면 나라가 큰일 날 뻔했다”는 말을 종종 한다. 동아일보 구독과 광고는 대한민국 체제와 시장 및 기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체제유지 비용이라는 데 공감하는 사람도 많다. ‘진정한 자유’에 대한 의식이 뚜렷한 상당수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사태를 겪으면서 시장친화적 매체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했다.

기업과 기업 임직원들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꽃이자 최대 수혜자다. 기업인들은 합리적 이성이 실종되고 거짓과 불법이 판을 친 지난 두 달의 한국 사회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부 세력의 위협에 굴복할지, 맞설지를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한다. 정교한 역량이 부족한 혼(魂)만큼,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혼이 없는 실용 만능도 취약하다. 위기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권순활 산업부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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