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윤진섭]중국 미술작가 신드롬의 이면

  • 입력 2008년 7월 5일 03시 03분


중국작가의 유화작품 한 점 가격이 무려 101억 원! 그것도 40대 중반의 작가다. 5월 24일에 열린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들려온 이 소식은 국내의 미술시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작년에 국내 정상급 화랑에서 초대전을 갖기도 했던 쩡판즈가 바로 그 주인공. 이로써 그는 아시아 작가들 중에서 최고가로 자신의 기록을 우뚝 세운 행운아가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에게도 그 이름이 익숙한 장샤오강, 웨민쥔, 왕광이 등은 일찌감치 세계 미술시장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대표적인 블루칩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해외 경매가 황금 알을 낳는 창구로 인식되면서 국내 화랑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 요즘에는 들리는 것이 전부 옥션과 아트 페어에 관한 이야기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과 방송은 연일 이들에 관한 이야기뿐이고, 정작 가장 중요한 미술의 본질은 증발된 지 오래다. 우리가 왜 그림을 그리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어느 사이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천민자본주의는 그렇게 우리의 영혼을 빼앗아가 버렸다. 우리가 아차 방심하는 사이에 숭고한 우리 영혼을 갉아먹고 이제 그 독을 내뿜을 채비를 하고 있다.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일까.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빠져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마냥 환락에 젖어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인생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할 것인가.

미술이 진정성을 잃고 방황하는 기류는 진작부터 포착됐다.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의 젊은 작가들을 초대한 국내의 한 기획전이 소위 대박을 터뜨렸을 때, 거기에 출품했던 한국 작가의 상당수가 중국풍 냄새를 풍겼던 일, 화상들의 시선이 젊은 시절의 고생을 딛고 이제 막 성숙한 세계를 구축한 40, 50대 작가들을 외면하고 돈이 되는 20, 30대 작가들에게 온통 쏠렸을 때, 개인전을 연 작가에게 작품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얼마나 팔았느냐”고 유행처럼 묻기 시작했을 때, 가짜 그림이 미술시장에 창궐했던 그때…. 이미 우리 미술의 진정성은 증발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어찌 미술계에 종사하는 특정 부류의 잘못이랴.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미술계 시스템의 구조상 우리의 환부(患部)를 깊게 한 책임은 어느 특정한 집단에 있지 않다. 그것은 미술인과 미술 관련 종사자 모두의 책임이다. 굳이 따지자면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소위 ‘관리’해 준다는 명분으로 전도유망한 작가의 발목을 잡는 화상일 수도 있고, 돈에 영혼을 판 작가들일 수도 있다.

언제부터 우리 미술계가 그렇게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림에 길들여졌는가.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는 수많은 미술제와 각종 아트 페어를 보라. 실물을 방불케 하는 극사실주의 그림들, 별 내용도 없이 화려하게 색조화장을 한 그림들, 비슷비슷한 화풍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저 그런 그림들이 마치 호객행위를 하는 듯 관람객들을 유혹하지 않는가. 나를 포함한 비평가들의 칼날은 무뎌진 지 이미 오래고, 신문의 비평란은 사라져 돌아올 줄 모른다.

전위미술의 최전방이자 국제미술의 실험실인 비엔날레마저 아트 페어의 막강한 힘에 눌려 존립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이때, 우리 미술인 모두는 기사회생의 용틀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돈의 유혹을 물리치고 지고한 인간정신의 회복을 위하여, 미술의 살아 있는 ‘진정성’을 위하여 우리 모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때다.

윤진섭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호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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