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성 교수의 소비일기]내집 있어도 속상해 하는 세상

  • 입력 2008년 6월 25일 02시 58분


《주위 사람들이 묻습니다.

“요즘 선생님 사시는 동네가 변했다고 신문마다 난리던데, 집값이 많이 올랐겠네요?”

“그렇다고들 하는데 뭐 그리 올랐겠어요. 그리고 제 집도 아닌데요, 뭘.”시큰둥하게 답하지만 은근히 기분은 좋습니다.

게다가 집 앞에 엄청난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고 새로 자율형개방학교까지 생겼으니, 앞으로 집값이 더 올라갈 거라며 시어른들께서 흐뭇해하십니다. 》

저희 가족은 시부모님과 함께 삽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좋은 표현도 있지만, 저희들 경우엔 얹혀산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5년 전 이사한 지 정확하게 한 달 만에, 저희가 팔아버린 집이 2억 원이나 올랐었지요. 그리고 1년 만에 그 집은 저희가 새로 산 집값의 딱 두 배가 되더군요.

당신께서 팔았던 바로 옆동네의 집값이 이토록 변하는 것을 지켜보시며 적잖이 속이 상하셨을 시어른들께선 이제야 분(?)이 조금 풀리시나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딸아이가 묻습니다. “할아버지, 집값이 올라가는 건 좋은데, 이렇게 집값이 자꾸 올라가면 저는 나중에 어떻게 집을 사요?” 아무 생각도 없을 것 같았던 아이가 하는 질문에 갑자기 당황스러워집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집에 관한 한,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이 속상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돈을 모아도 도무지 집을 장만할 수 없을 것 같아 속상하고, 집값이 그대로 멈춰 버린 것 같은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아파트를 보며 속상해 하고. 또 집값이 아주 많이 오른 서울 강남구의 S동 사람들은 같은 강남이지만 더 많이 오른 D동을 바라보며 마치 큰 손해라도 본 것 같이 속상해 합니다.

게다가 집값이 너무 올라 큰돈을 번 사람들조차 보유세 때문에 속상해 합니다. 경제적 능력이 상대적으로 큰 집단이 더 많은 세금 부담을 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집값 오르는 데 나라가 보태준 거 있느냐’는 매우 설득력 있는 듯한 항변까지 합니다.

집값은 입지조건, 주변환경, 이동거리 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제가 잠시 머물던 아주 낡은 집은 단지 학군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옆 동네에 있는 더 좋은 집에 비해 30만 달러나 비싸더군요.

그러나 누구나 필요로 하는 소비재인 주택이 지금처럼 너무나 매력적인 투자 혹은 투기의 대상이 되도록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한국의 집값은 언제나 폭등을 되풀이할 것이고, 그 폭등은 많은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결핍감을 느끼게 만들 것입니다.

정말 살기 좋아졌고, 모든 것이 풍족해졌는데도 오히려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는 사회는 결코 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가 아닐 것입니다.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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