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재계 파워엘리트]두산그룹

  • 입력 2008년 5월 27일 02시 58분


‘最高’를 향한 ‘最古’기업의 혁신 전도사들

오너 끌고 전문CEO가 밀고온 ‘112년 전통’… “2015년 매출 90%는 해외사업장서”

올해 창립 112년째를 맞는 두산그룹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1896년 서울 종로에서 ‘박승직 상점’으로 시작해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지나 21세기에도 한국의 기업사(企業史)를 계속 써나가고 있다.

100년 넘게 국내 소비재산업을 대표해 온 두산그룹은 1990년대 중반부터는 적극적인 구조조정과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산업재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51억 달러(약 5조3550억 원) 규모의 중장비업체 밥캣 등 미국 잉거솔랜드의 3개 사업부문을 인수하는 등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2015년에는 전체 매출의 90%를 해외사업장에서 거두겠다는 목표다.

‘최고(最古) 기업’이라는 명함에 안주하지 않고 고비마다 ‘변화’를 선택한 경영진의 판단이 오늘의 두산그룹을 만든 것으로 재계는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픔’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모태기업이던 OB맥주를 매각했고, 2005년에는 이른바 ‘형제의 난’을 통해 당시 박용오 회장이 그룹에서 퇴진했으며, 박용성 회장도 2년여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이런 시련을 딛고 최근 두산그룹은 한 단계 도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글로벌 마인드’ 앞세운 형제경영의 경쟁력

그룹 내 핵심 의사결정은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박승직 창업주의 아들)의 3남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4남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 5남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협의를 거쳐 진행된다. 이 중 박용성 회장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은 현재 2선에서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룹 창립 100주년이던 1996년부터 박용성, 박용만 회장은 그룹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새로운 100년’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들은 각각 미국 뉴욕대와 보스턴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으로, 일찍부터 ‘글로벌 비즈니스 마인드’를 키워왔다.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경영컨설팅’을 미국 맥킨지사(社)로부터 받기로 결정한 데도 두 형제의 뜻이 많이 작용했다. 당시 이들은 “유동자산이 많아야 한다”는 조언을 받아들여 핵심 계열사들을 속속 매각했다.

신생 기업 인수는 박용성 회장이 대부분 주도했다.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2006년 영국 미쓰이밥콕(현 두산밥콕) 등의 인수가 사실상 그의 ‘작품’이다.

‘구조조정 원년’인 1996년에 그룹 총매출은 3조9000억 원, 영업이익은 3000억 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각각 18조6000억, 1조6000억 원으로 11년 만에 각각 4배와 5배로 성장했다.

2006년 취임한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은 원래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이다. 서울대병원장 시절에도 분당서울대병원 개원, 강남진료센터 오픈 등을 통해 남다른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그룹의 대외적 위상에 맞는 사회공헌과 문화사업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현재 연강재단 이사장도 겸임하고 있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그동안 M&A의 ‘야전사령관’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지난해 잉거솔랜드 3개 사업부문의 인수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인재 발굴에도 관심이 높은데, 현재는 기업 성장은 결국 사람에 달려 있다는 2G(Growth of People, Growth of Business)전략을 추진 중이다.

○ 전략, 재무 분야 전문성 갖춘 전문경영인들

두산그룹에는 전략, 재무 분야에 특기를 갖춘 전문경영인이 많다. 오너 경영진을 비롯해 비평준화 시절의 명문고와 서울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눈에 띈다.

㈜두산에는 3명의 부회장이 있다. 제임스 비모스키 부회장은 그룹 최초의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다. 맥킨지 서울사무소장 시절 ‘고객 회사’인 두산그룹의 전략 컨설팅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영입된 케이스. 강태순 부회장은 1973년 두산유리에 입사해 그룹 기획실 부장과 ㈜두산 사장 등을 거치며 ‘재무회계통’으로 자리매김했다. 비모스키 부회장과 강 부회장은 외식사업을 분사해 부채비율을 크게 줄이는 데 기여했다.

이재경 부회장은 1973년 두산건설(당시 동산토건)에 입사해 두산식품, OB맥주 등을 거쳐 외환위기 시절에는 ㈜두산 전략기획본부 상무로 일했다. 현재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아 그룹 내 주요 사안을 총괄하고 있다.

이남두 두산중공업 부회장은 한국중공업으로 입사해 두산엔진 사장 등을 지냈다. 2006년 두산중공업 사장에 부임하자마자 생산현장을 돌았는데, 이 덕분인지 최근 2년 연속 무분규 임금단체협상을 이끌어냈다.

1977년 두산기계에 입사해 두산기계 사장 등을 거친 최승철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은 30여 년간 기계분야에 종사해 온 정통 엔지니어 출신. 현재 한국건설기계산업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정지택 두산건설 부회장은 경제관료 출신으로 중앙종합금융 부회장과 ㈜센텔 사장 등을 거쳐 2001년 두산에 합류했다. 정우택 충북도지사의 친형이기도 하다.

김용성 두산인프라코어 사장은 맥킨지 컨설턴트 시절 두산그룹 전략 컨설턴트로 일한 인연으로 2001년 그룹 내 투자컨설팅사인 네오플럭스 사장으로 영입됐다.

1976년 대우건설에 입사해 2006년까지 국내외 건설, 주택부문 등을 망라한 김기동 두산건설 사장은 대표적인 ‘건설통’으로 서울대에서 건축공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오너家 4세들 건설-중공업 등 곳곳서 두각

두산그룹은 한국기네스협회가 인정한 한국 최고(最古) 기업답게 오너 4세들까지 경영 일선에 진출했다. 오너 4세 경영인 중 선두주자는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건설 부회장. 그는 할아버지인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이 강조한 “우선 남의 눈칫밥을 먹어봐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1992년 일본 기린맥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년간 기린맥주에서 경험을 쌓은 박정원 부회장은 1994년 두산그룹으로 넘어와 OB맥주 이사대우, ㈜두산 대표이사 부사장과 사장을 거쳐 2005년 7월부터 두산건설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과다한 부채비율로 경영이 어려웠던 두산건설을 주력 계열사로 성장시킨 역량을 인정받아 올해부터 ㈜두산 부회장도 겸직하고 있다.

박 부회장의 동생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도 국내외 중공업 업계에서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두산그룹이 두산중공업 전신으로 공기업이었던 한국중공업을 인수했을 때부터 경영에 참여해 세계 발전 및 담수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전무는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장남. 1993년 두산음료에 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두산그룹의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 전략을 수립했던 ㈜두산의 전략기획담당 부서인 ‘트라이씨(Tri-C)’에서 경영 수업을 쌓고 두산인프라코어 주력사업인 지게차 부문을 맡고 있다.

박태원 두산건설 전무는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의 장남으로 사촌형인 박정원 부회장과 함께 두산건설을 이끌고 있다.

이 밖에 박용곤 명예회장의 딸인 박혜원 상무가 두산매거진에서, 박용현 회장의 차남인 박형원 상무가 두산인프라코어에서, 박용성 회장의 차남인 박석원 상무가 두산중공업에서 각각 근무하고 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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