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이태동]외국선 ‘文史哲’ 살아나는데

  • 입력 2008년 5월 10일 02시 58분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목표는 그의 대선 공약처럼 이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위해 길을 닦고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 이념보다 실용주의를 선택했다. 그러나 매슈 아널드가 주장했던 것처럼 인문학적 가치를 외면하고 실용주의에만 매달리게 되면, 우리 사회가 속물주의로 타락하게 돼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성숙한 문화의식 없이 선진국으로 진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대학의 중심 학문인 인문학이 고사(枯死) 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당시 교육부는 학제간의 교류만을 강조했을 뿐, 사회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기대를 걸었던 이명박 대통령 역시 다른 것보다 실용적인 것에만 몰두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에, 무너져가는 인성 교육의 핵심인 인문학 부흥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인문학의 깊이 있는 공부는 삶의 의미와 목표를 좀 더 철학적으로 규명해 주기 때문에 과학자와 법률가는 물론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게도 인문학 지식은 그들의 사회적 사명의식을 확인하고 삶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철학은 논리적 사고력을 키워줌과 동시에 우주 및 사회의 구성 원리를 터득하게 해 왜소한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

문학은 예리한 통찰력과 비평적인 판단능력을 함양시킴은 물론 역사와 함께 인간의 꿈과 인식론적인 깨달음의 지혜를 가져다주는 구체적인 경험의 폭을 크게 넓혀준다.

인문학이 비록 오랫동안 실용주의에 묻혀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영미 대학을 중심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많은 대학생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 강의실에 몰리고 있는 물결 현상은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상륙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새 정부 들어 로스쿨이 문을 열게 되고, 정부가 대학 교육의 모든 책임을 대학의 자율에 맡기도록 했기 때문에 우리의 경우도 사회적 인식의 도움만 얻게 되면, 실용적인 학과에만 상대적으로 많이 몰렸던 우수한 두뇌 집단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예처럼 인문학 분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를테면 학부에서 인문학을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로스쿨에 가기를 원할 때, 그들의 학부 공부가 ‘언어 이해’ ‘추리 논증’ ‘논술’의 세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는 법학적성시험(LEET)에도 타 학과를 공부한 학생들보다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인문학은 주체적인 삶에 대한 지적인 목마름을 축여주고 인간성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졸업한 후 그들의 전문직을 수행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법학도의 경우, 법관이나 변호사가 된 후 개인의 인문학적 지식과 경험이 인간 가치에 바탕을 두고 자신의 직업윤리를 지키며 업무를 처리하는 데 큰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법률가들이 인간에 대한 예의와 신의, 그리고 사회적 책임과 같은 인간가치를 외면하고 개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해 위선적으로 행동하게 되면, 선진국에 대한 우리의 꿈은 결코 이룰 수 없게 될 것이다.

선진국 진입은 건전한 문화적인 토양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 문화는 인간성 연구와 인간 가치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피어난 상상력의 꽃이다. 먹고살기 위한 실용성 추구도 좋지만 선진국의 문은 성숙하고 창의적인 정신문화의 뒷받침 없이는 결코 열리지 않는다.

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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