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신분증 안 보여주면 벌금’ 경찰의 ‘오버’다

  • 입력 2008년 4월 28일 00시 14분


민주 경찰은 범법자나 사회질서를 깨뜨리는 사람에겐 엄한 존재여야 하는 반면 선량한 일반 국민에겐 친절한 지팡이로 다가서야 한다. 범법자에겐 물러터지고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국민에겐 횡포까지 부린다면 ‘본분에 역행하는 경찰’이다.

지난 정부에서 경찰은 군사시설을 공격하는 반(反)국가 시위대에 대해서까지 단호한 공권력 행사를 회피하는 비겁함을 보였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찰은 불법 시위에 대해 엄정한 법집행 의지를 밝혔다. 이상한 코드를 가진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본분에서 일탈하곤 했던 경찰이 당연한 원칙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경찰권(警察權) 행사가 단속 위주의 편의주의로 흐르다 보면 자칫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경찰이 불심검문을 위해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경찰관의 요구를 거부하는 사람을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하도록 하는 규정을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신설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경찰은 불심검문의 실효성(實效性)을 높이기 위해선 처벌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치안 유지라는 목적이 옳다고 해서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범법행위의 혐의가 없는 사람까지 붙잡아 놓고 강제로 불심검문을 하는 것은 다수의 무고한 시민에게 불편, 불쾌감, 불안감을 안기는 경찰권의 과잉행사다. 경찰이 길 가는 시민 아무에게나 마구잡이로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는 나라는 문명국이 아니다.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은 ‘어떤 죄를 범했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등’에만 불심검문이 가능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대로를 막아놓고 모든 운전자를 상대로 음주 측정을 실시해 술 마시지 않은 대다수의 선량한 운전자에게 폐를 끼치는 음주운전 단속도 그런 점에서 문제가 있다. 법 집행은 엄정하되 절제도 필요하다. 취지가 좋다고 해서 모든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경찰도 직무 능력 고도화를 통해 ‘치안과 인권 향상’이라는 두 소명(召命)에 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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