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하태원]정상회담 기대치 커지는 미국

  • 입력 2008년 3월 27일 03시 01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미국을 찾은 고위급 인사인 김병국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18일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번 방미 기간 중 주요 인사들과의 면담을 통해 (한미 간) 언어와 생각의 주파수를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4월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관계의 복원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새로운 한미동맹은 단순히 양자관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세계질서 확립에 도움이 되는, 인류의 자산이 되는 동맹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1월 말 대통령 당선인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면담했던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도 “미국은 우리 측에 사전 협의, 공통의 비전 설정, 한국의 국제적 역할 제고를 주문했다”고 소개했다.

정 의원이 소개한 내용들은 결국 노무현 정부 5년간 미국 측이 느낀 한미관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새 정부의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워싱턴의 주요 싱크탱크 연구원 및 학자 그룹과도 새로운 한미동맹의 방향이나 미국이 느낀 과거 한미관계의 문제점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새 정부 외교안보팀과 접촉이 잦은 한 미국 인사는 “이명박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서둘러야 할 대목은 양국 간 신뢰 회복이라는 것이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라며 “서로 진솔하게 대화할 수 있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싱크탱크 연구원은 “미국을 첫 정상회담 상대로 택한 것 자체가 새 한국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며 “반미(反美) 노선을 취했던 것으로 여겨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정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대통령은 유리한 위치를 점한 셈”이라고 진단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및 한반도 전문가들은 25∼28일 정상회담 사전 준비를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도 비슷한 주문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사석에서 “문제는 미국의 기대수준과 달라진 한국의 현실”이라며 “미국 행정부 내 일반적 기류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과거 한국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던 때를 회고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하거나 미사일방어(MD)체제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적극 참여하리라는 기대가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양국 정상이 서로에게 줄 첫인상 역시 첫 한미 정상회담 성공의 변수가 될 수 있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첫 만남은 북한을 바라보는 양국의 근본적인 시각차만 드러낸 최악의 정상회담 중 하나로 기록됐다. 좋지 않았던 첫인상만큼이나 이후 양국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반미면 어떠냐’라며 집권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2003년 5월 첫 한미 정상회담도 “기 싸움에서 노 대통령이 완승을 거뒀다”던 측근들의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이후 신뢰에 기반을 둔 한미동맹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동맹 간에도 국익의 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국가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국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미국 이외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듯이 한반도 전쟁 억지 못지않게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가 미국의 중요한 국가이익임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시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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