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아줌마 코드’로 장관 되겠나

  • 입력 2008년 3월 11일 20시 07분


이명박 정부가 여성 몫인 여성부 장관을 제외하고는 여성장관을 내지 못하고 출발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강금실 법무, 김화중 보건복지, 한명숙 환경, 지은희 여성부 장관 등 4명의 여성 각료가 탄생해 건국 이래 최다 여성장관 임용 기록을 세운 것과 비교된다. 만일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여성부가 폐지됐더라면 그나마 유일한 여성장관도 없어질 뻔했으니 이 정부는 여성부 존치를 요구한 민주당에 내심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스태그 거번먼트’는 정치 후퇴

이는 애당초 정부가 원했던 시나리오가 아니다. 장관 후보자였던 여성들이 부동산 문제와 그에 따른 부적절한 해명으로 중도 사퇴한 것은 예상 밖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그때부터 깊어졌다. 행시 사시 외시를 비롯한 국가고시와 공무원시험, 교사임용고시는 물론이고 기업체 공채시험도 여성들이 휩쓰는 세상인데도 정작 여성 장관감을 구하지 못해 막판까지 애를 먹은 것이다.

정부는 우여곡절 끝에 변도윤 서울여성플라자 대표를 여성부 장관에 기용했지만 환경부 장관에는 남성을 임명했다. 여성부가 다른 중앙부처 일개 국(局) 정도의 초미니 부로 축소된 점까지 감안하면 사실상의 ‘스태그 거번먼트(stag government)’인 셈이다. ‘스태그’는 수사슴이고, 스태그 거번먼트는 테스토스테론 넘치는 남성 정권을 뜻한다. 선진국에 이런 남성 일색의 내각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내각은 정치사적으로 후퇴한 내각이다.

독신이라고 장관을 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변 장관의 발탁도 능력과 여성계 대표성이란 측면보다는 문제의 소지가 적은 인물을 고른 결과로 보인다. 그의 기용은 미국 빌 클린턴 정부에서 ‘내니 게이트’가 발발하면서 독신 신분이 기용의 큰 이유가 되었던 재닛 르노 법무장관을 연상케 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각료를 기용한 클린턴 대통령은 첫 법무장관에 그들 부부와 절친한 에트나생명보험 여성 상무 조이 베어드를 임명했다. 그런데 베어드는 불법 체류자를 운전기사와 유모(내니)로 고용한 내니 게이트가 터지면서 사퇴했다. 다음 후보자였던 여성판사 킴바 우드도 불법 체류자를 유모로 쓴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에서도 전문직 여성들의 자기관리는 평균 이하였던 것이다. 결국 클린턴은 자신이나 힐러리와 아무 인연도 없는 독신 재닛 르노를 임명했다.

새 정부가 마땅한 여성장관감을 쉽게 찾지 못한 데에는 보수층의 빈약한 여성 인재풀 탓도 있지만 자기관리에 철저하지 못했던 여성계 인사들의 책임도 크다.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 인재 등용을 담당했던 한 인사는 “한국에서 한 가닥 하는 여성 500여 명을 검증했는데 깨끗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중 국적, 부동산 투기, 자식의 병역비리 세 가지 가운데 하나에는 꼭 걸리더라는 것이다.

공직 원하면 女性도 ‘프로’ 돼야

어느 기업의 여성 간부가 인터뷰에서 ‘처음 10년은 여자라서 불리했고, 다음 10년은 여자라서 유리했다’고 말한 것을 보았다. 맞는 말이다. 사회가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춘 ‘알파걸’의 등장을 환영하고 이끌어주는 분위기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대표성이 중요한 정계에선 더욱 그런 편이다. 그런데 차별 철폐를 주장하던 여성들이 정작 유리천장이 없어졌는데도 도덕성에 발목이 잡혀 올라갈 수 없다면 이 무슨 망신인가.

이번에 낙마한 여성장관 후보자들의 문제점을 나는 ‘아줌마 코드’라고 본다. 여기서 아줌마란 ‘조직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란 뜻이다. “유방암이 아니라고 해서 남편이 오피스텔을 사줬다”느니 “아는 친지가 권유해 땅을 샀다”는 말은 어쩌면 아줌마 세계에게는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장관의 언행은 동네 찜질방에서의 언행과는 달라야 한다.

공직을 염두에 두거나 정치에 관심이 있는 여성들은 자기관리와 언행에서부터 먼저 프로가 되어야 한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만이 낚아챌 수 있다.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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