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차지완]공정위, 담합 자진신고업체 공개 제정신인가

  • 입력 2008년 1월 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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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7개 석유화학회사가 비닐의 원료인 합성수지 가격을 담합한 혐의가 있다며 명단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이 가운데 6개 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들 회사 가운데 3개사는 검찰 고발도 병행했으며 공소시효가 끝난 3개사는 과징금만 물리고 고발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적발된 7개사 중 1개사는 자진신고 감면제도에 따라 과징금 부과 및 고발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했다.

‘시장경제의 적(敵)’으로 꼽히는 담합(카르텔)은 은밀한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조사하기도, 입증하기도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공정위가 담합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논란도 자주 일곤 했다.

공정위의 담합 조사는 자진신고 감면제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기업이 담합 사실을 공정위에 고백하면 과징금을 깎아 주거나 면제해 주고 검찰 고발 대상에서도 제외해 주는 일종의 미끼다.

문제는 공정위가 누설해서는 안 될 자진신고 회사를 사실상 공개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법은 소송 등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진신고자의 신원과 제보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이를 스스로 어긴 셈이다.

유화업계 담합 발표만 하더라도 혐의가 인정돼 회사 이름이 공개된 7개 회사 중 6개 회사가 과징금을 부과받고 이 가운데 3개 회사는 고발, 3개 회사는 고발 면제됐으니 남는 한 곳이 어디인지는 뺄셈만 제대로 해도 알 수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에도 산업용 전동기 가격담합 사건을 발표하면서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공정위의 한 당국자는 사석에서 “경쟁정책에 관해서는 한국이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지존(至尊)”이라는 말을 즐겨 한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비교하면 아마추어 수준”이라는 지적이 자주 나온다. 한 기업 관계자는 “간접적으로라도 신고회사를 공개하는 것은 해당 기업에도 두고두고 부담이 크다”면서 “이게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냐”라고 꼬집었다.

공정위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전문위원을 한 명도 파견하지 못했고 조직도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의 위상 추락은 그동안 사실상 ‘정권의 시녀’로 전락해 기업 압박의 전위대로 나선 원죄(原罪)와 함께 업무상의 아마추어리즘도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차지완 산업부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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